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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사후 - 河東獅吼

기사승인 23-02-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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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학자 박황희 칼럼

‘사자후(獅子吼)’란 사자가 포효하면 다른 짐승들은 모두 숨을 죽이듯이, 부처가 정법을 설하면 여러 이단의 사설들은 모두 자취를 감춘다는 뜻을 나타내는 개념어이다.

그런데 이 말이 ‘사나운 아내’를 의미하는 ‘하동사후(河東獅吼)’로 쓰이게 되고 그런 아내를 무서워하는 공처가라는 의미를 갖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중국의 대문호였던 소동파는 매우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그가 교유하는 사람 중에는 특이한 인물이 많았다. 그에게 ‘진조(陳慥)’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호는 ‘용구거사(龍邱居士)’ 이며, 자(字)는 ‘계상(季常)’이다. ‘진계상(陳季常)’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학문이 출중하였던 그는 특히 불교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명사들 간에 불교에 관한 토론이 있을 때면 늘상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하였다. 그러던 그가 아내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볼품없는 사내가 되고 말았다.

하루는 소동파가 진조(陳慥)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집 앞에서 담장 너머로 진조의 아내 하동(河東) 유씨(柳氏)가 남편 진조를 호되게 꾸짖고 있는 우레와 같은 호통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동파가 충격을 받고 이때 지은 시가 ‘기오덕인겸간진계상(寄吳德仁兼簡陳季常)’이라는 24구의 시인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뉘라서 용구거사만큼 현명하겠는가?
불경과 불법을 토론할 때면 밤잠도 안 자더니
갑자기 하동사자의 울부짖음을 듣고는
지팡이도 손에서 떨어트리고 정신마저 혼미하네
誰似龍邱居士賢-수사용구거사현
談經說法夜不眠-담경설법야불면
忽聞河東獅子吼-홀문하동사자후
拄杖落手心茫然-주장낙수심망연

진조의 자를 딴 ‘계상벽(季常癖)’ 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진조의 고질적인 버릇이란 뜻으로 곧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처가’ 또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을 에둘러서 ‘계상벽’이라고 한다. 또한, 진조의 아내 하동(河東) 유씨(柳氏)가 내뿜는 벼락같은 호통 소리를 빗대어 ‘하동사후(河東獅吼)’라 하였으니 이는 ‘사나운 아내’라는 의미와 동시에 ‘공처가’라는 뜻을 함께 지니게 되었다.

이쯤에서 나의 가정 비사를 하나 공개하고자 한다. 최근 우리 집도 예외 없이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 관리비 명세서를 보던 마님께서 문간방에서 수년째 떨어져 자던 내게 ‘하동사후(河東獅吼)’와 같은 불호령을 내렸다.

“오늘부터 당장 안방으로 와서 자”

심약하지만 삐딱이인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님 저는 ‘진계상(陳季常)’이 아녀요” 이를 기회로 내게 마님에게 덤비는 묘수가 하나 생겼다. 여차하면 베게 들고 “자꾸 이러면 나 저 방 가서 잔다.” 하고 들이대는 것이었다. 두어 번 써먹었더니 그러다 기어이 마님의 날벼락이 떨어졌다.

“당장 나가횻” 

에혀 이 북풍한설에 나가라면 대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너무 하시네~
 

전북타임즈신문

<저작권자 전북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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