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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붕괴의 전조 ‘사교육비 역대 최대’(2)

기사승인 24-10-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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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칼럼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기성세대가 알고 있는 수능과 오늘의 수능은 다르다. 수능 문제의 생산과 소비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되었으며, 수능은 이제 문화로 정착했다.

한국의 수능시험, 대학입시는 다수를 탈락시키기 위한 장치이며, 그 원리는 엄격한 변별이며, 경쟁이 치열할수록 변별의 기법은 정교해지고, 시험의 정당성은 변별의 합리성과 공정성에 있다.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할수록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절차적 공정성에 더 집착하고, 이 공정성 집착이 더 엄격한 변별을 요구하며, 변별의 요구는 사실상 모든 수능 문항을 준킬러문항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신 성적에서 실패한 학생들은 수능에서 승부를 걸기 위해 자퇴를 하거나 재수의 길로 가기 때문에, 수능 시험의 병목은 더욱 심각해진다. 내신의 확대는 수능을 고도의 경쟁적 시험으로 압박한 요인이 되었다. 수능시험 문제가 학력 혹은 수학능력의 측정과 무관한 엄격한 변별의 요구에 부합하는 퍼즐게임으로 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열망하는 많은 교육자나 지식인들은 여전히 수능 자격고사화, 내신 위주의 대입 선발, 수능 상대평가 폐지 등을 외치지만, 그러한 주장은 1~2점 차이의 엄격한 변별을 요구하는 학부모, 줄세우기 서열 상위의 학생을 순서대로 싹쓸이 하려는 대학에게는 한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수능이 반교육적인 제도임을 알고 있지만, 공정한 변별의 정언명령을 거부할 어떤 대안도 생각해 낼 수 없다. 수능이 실력 평가의 측면보다는 퍼즐게임이 되면서, 패배를 승복하지 않는 수험생의 재수, 삼수 무한도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공교육의 결손이 사교육을 키웠다는 통상의 지적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다. 과거 방과후 학교, EBS 인터넷 강의 등이 사교육을 잡는 방법으로 도입되었지만, 그것은 학교를 학원처럼 만들겠다는 시도와 다름 없었다. 그것은 교육적 원칙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즉 학교는 수능 대비를 위한 기술 습득 기관이 아니다. 교육자로서 교사는 입시 성공을 위해 학생을 조련하는 역할을 잘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므로, 학교공부가 입시에 종속되면 이 조련사의 역할을 훨씬 더 잘하는 사교육 강사들의 인기는 더욱 치솟는다.

안정된 일자리, 좋은 직업 획득의 기회가 더욱 희소해질수록, 학부모들은 의대나 유명대학 상위권 학과의 입학이 자녀의 미래를 더 확실하게 보장해준다고 믿지 않을 수 없고, 의대 등 안정된 자격증을 부여해주는 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루저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세상 사람들이 믿으면 믿을수록 수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즉 사교육은 수능이라는 병목의 과부하의 산물인데, 변별과 서열화라는 경쟁게임 자체의 논리와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라는 사회적 변수에 좌우된다. 반대로 말하면 사회적 변수, 즉 학력주의와 대학의 서열화가 둔화될수록 학부모들은 무리한 사적 교육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고, 시험이 절대평가가 되거나 대입이 수능성적 서열에 기초하지 않게 되면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몰려갈 유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은 결국 사회적 지위 확보 경쟁이므로 교육과는 원칙적으로는 무관하다. 27조 원의 사교육비는 진정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청년을 육성하는 데 지출되지 않고, 변별에서 승리하기 위한 게임에 지출되는 돈이다. 그렇게 많은 지출이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자나 인문학자를 배출하는 것과는 무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퍼즐게임의 승리자들은 자신에게 많은 투자를 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할지언정 그 게임 밖의 사회,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줄 수도 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기는커녕 언제나 자기보다 노력과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극도의 분노와 박탈감을 갖게 된다. 수능성적을 둘러싼 공정에의 집착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한 우물 안 개구리들 간의 죽고 살기 전쟁이다. 우물 밖에서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우물이 막히거나, 우물에 독이 들어오면 모두가 죽는다. 그런데도 시험 성적이 전부인 줄 안다. 그리고 자신들이 ‘노력’과 능력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정투쟁이 만연한다. 그러나 수능성적대로 사회적 보상의 서열을 배치할 수 있는가? 그런 공정은 도달 불가능한 목표다.

의사, 변호사, 그리고 명문대 졸업생이 성적 서열만큼의 지위를 평생 누릴 수 있는가? 회사 입사에서 대학 졸업장의 효과는 갈수록 떨어진다는 자료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투자를 줄일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경쟁 그 자체, 그리고 성적 변별의 공정성을 신앙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이 문제다. 막대한 사교육 투자의 주체인 한국의 386 세대는 80년대 말 이후 명문대 졸업장을 무기로 대거 중산층으로 편입된 최초의 세대이고, 이들이 견지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한 집착이 사교육을 부추긴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사회불신이 심각하고, 사회복지나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경쟁 그 자체가 더 격렬하고, 시험을 통한 변별이 신화로 자리 잡은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계속>

김동춘

<저작권자 전북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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