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 앞에 무너진 대학, 지성의 붕괴를 고발한다
    • 김관춘 / 논설위원

    • 윤석열 정권하에서 진리와 정의의 상징이어야 할 대학이 권력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국민들은 분노와 참담함 속에 지켜봐야 했다. 국민대와 숙명여대가 김건희 씨의 석·박사 학위 논문에 대한 명백한 표절 정황을 확인하고도, 오랜 시간 침묵과 회피로 일관했던 그 반지성적 행태는 단순한 행정적 태만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지성의 배반이자, 학문 윤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권력의 그림자에 휘둘린 두 대학의 모습은 작금의 이 나라 고등교육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로 오래 남을 것이다.

      국민대는 2022년, 교육부로부터 김건희 씨의 박사논문이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숙명여대 또한 석사논문에 표절 정황이 뚜렷하다는 학계의 반복된 지적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대학은 ‘시효 경과’와 ‘고의성 부족’이라는 궁색한 핑계를 내세워 학위 유지 결정을 고수했다. 이는 명백히 형식 논리에 기대 본질을 외면한, 책임 회피의 결정이었다. 당시 대학들은 학문적 양심보다 자본논리와 정치적 계산을 앞세웠고, 그 결과 학문의 자율성은 권력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대학이란 본디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진실을 탐구하며, 사회적 비판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진리와 지성의 전당이다. 그러나 국민대와 숙명여대는 스스로 그 정체성을 부정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논문 문제 앞에서 이들은 학문이 아니라 권력에 고개를 숙였고, 결국 ‘학위’를 지켜낸 것이 아니라 ‘학문’을 버리는 선택을 했다. 연구 윤리의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대학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지성은 침묵했고, 윤리는 무너졌으며, 청년들에게 남겨준 것은 ‘권력에 기대면 표절도 용서받는다’는 비굴하고 왜곡된 메시지뿐이었다.

      무엇보다 큰 피해는 묵묵히 연구와 학문에 몰두해 온 다수의 성실한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논문 하나를 쓸 때마다 인용 출처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며, 연구의 정직성과 투명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샌 지성인들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들의 노력을 배반했고, 공정과 정의에 대한 믿음을 크게 훼손시켰다. 한 사회가 윤리적 가치 위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험대에서, 대학은 철저히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최근 정권이 교체되면서 숙명여대는 김건희의 석사학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학칙 개정을 완료했고, 국민대 또한 박사학위 취소 절차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 이제서야 뒤늦게 권력의 눈치를 그만 보기 시작했다는 정치적 해석이 가능하다. 김건희가 위세를 부릴 땐 비굴하던 대학이 그가 몰락하자 태세 전환을 시도한 것은 그저 더러운 술수에 다름 아니다. 이미 무너진 신뢰와 윤리는 회복하기 어렵다. 대학이 자율성과 양심을 포기한 채, 정권의 풍향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처럼 행동한 지난날은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역사적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교육부 역시 이 사안에 있어 철저히 무기력했다. 명확한 표절과 연구 부정 의혹이 제기된 논문들에 대해, 권력의 눈치를 본 대학들이 엉뚱한 논리를 들이밀 때, 교육 당국은 단호한 입장 표명과 제도 개선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딴청을 부렸고, 다수의 대학사회 역시 침묵으로 동조했다. 그 결과, 공공성을 지켜야 할 대학은 권력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했고,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민주주의는 언론, 시민사회, 학문이라는 세 기둥 위에 선다. 그중 대학은 진실을 탐구하고 권력의 횡포를 견제, 비판하는 지성의 최후 보루다. 그러나 그 보루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대학이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진실을 지켜낼 것인가? 오늘날 청년들이 점점 더 냉소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른들이 지켜내지 못한 공정의 가치를 이제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는가?

      국민대와 숙명여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김건희의 학위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보호했던 것은 한 개인의 경력이 아니라, 대한민국 고등교육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시대는 대학이 권력 앞에 무릎 꿇던 날, 교육의 윤리적 사망 선고가 내려졌음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윤리와 상식, 그리고 공공성의 최후 보루가 무너진 참담한 사건이었다.

      지성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진실을 외면한 학문은 학문이 아니며, 윤리적 책임 없는 교육은 교육이라 말할 수 없다. 국민대와 숙명여대는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부끄러운 선택을 반성하고, 학문적 정직성과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면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더럽혀진 그 이름은 오랫동안 ‘지성의 배반’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국민의 기억 속에 박제되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더러운 세상의 중심에는 언제나 타락한 지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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