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보자.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가 각 부처의 업무 보고를 받던 중에 검찰과 방통위, 해수부의 보고는 도중에 중단시켰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떤 매체는 국정기획위가 보고하는 공무원들에게 호통을 쳤다느니 군기 잡기를 한다느니 갑질을 한다느니 하며 국정기획위를 비판한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검찰, 방통위, 해수부의 업무 보고를 중단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업무 보고의 내용이 부실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를 공약했는데, 검찰은 수사권을 놓지 않으려고 했단다. 윤석열 정권에서 방송과 방통위의 독립은 와해되다시피 했는데 방통위의 보고에는 반성도 개선 방안도 없었다 하고, 해수부의 업무 보고에는 부산 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사실상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같이 보도해야 독자들은 국정기획위가 업무 보고를 중단시킨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언론 윤리는 그런 보도를 ‘사실 보도’라 한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헌장에는 정확한 사실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달하고, 정보원과 취재 과정 등을 가능한 한 투명하게 알리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기자협회의 윤리헌장을 읽어본 기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보기에는 1%도 안 될 것 같다. 30년차 기자가 되도록 글자로 된 언론 윤리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나처럼.
우리 언론의 보도에선 특정 정파에 기울어진 보도,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도,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보도, 대중의 분노를 조장하는 괴벨스식 보도가 횡행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 조선일보가 확산시킨 ‘혼밥 외교’ 보도가 그러하다. 심지어 정치공작에 동원된 듯한 보도도 있었다. 검찰이 국정원 댓글공작을 수사하던 박근혜 정부 초기에 나온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가 그러하다. 그 모두가 ‘언론 윤리’를 성실하게 준수한다면 활자화할 수 없는 보도들이다.
기자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취재원 보호가 그렇다. 내부고발자처럼 그 사람이 아니면 내부의 깊숙한 비리를 알 수 없고, 누구인지 드러나면 신변의 위협이나 심각한 불이익이 예상될 때만 적용하는 게 ‘취재원 보호’다. 미드 에도 나오듯이 취재원 보호는 기자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와 보도 책임자가 상의해서 결정하는 거다. 기사에 ‘관계자’로 대표되는 익명을 남발하고 그 익명이 누구냐고 물으면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밝히지 않는 건, ‘취재원 보호’라는 언론의 윤리를 잘못 알고 오남용하는 것이다.
정보든 자료든 의견이든 출처를 밝히는 실명 보도가 언론의 윤리이고 보도의 기본 원칙이다.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자’ 특종 보도에는 박근혜 청와대와 국정원이 연루되어 있다. 청와대의 사주를 받은 국정원이 검찰총장의 뒷조사를 했고 조선일보가 총대를 메고 폭로했다는 것이 언론계에 알려진 정설이고 검찰의 수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에 ‘뒷조사 자료’를 제공한 제보자는 취재원 보호의 대상일까? 아니다. 그 취재원은 내부고발자도 아니고 공익제보자도 아닌 정치적 의도가 있는 제보자이고 조선일보의 보도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몰아내려는 정치공작의 일부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 경우의 취재원 보호는 언론 윤리를 오남용하여 정치공작에 연루된 범죄자를 은닉하는 불법행위라 하는 게 옳다.
기사를 읽다 보면 왜 지금 뜬금없이 이런 보도를 할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MBC의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보도가 그러했고,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에 나온 조선일보의 혼외자 보도가 그러했다. 기자들에게 언론 교과서라 불리는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에는 그런 보도를 할 때는 독자,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입수한 경위와 사실 여부를 확인한 과정 그리고 왜 보도하기로 결정했는지 등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라고 쓰여 있다. 그래야 독자, 시청자들이 언론의 보도를 신뢰할 수 있다는 거다.
국정기획위원회의 업무 보고 중단을 ‘호통’ ‘공무원 군기 잡기’ ‘갑질’이라고 왜곡하는 보도가 기자로 살아온 내 눈에는 이재명 정부 5년을 문재인 정부 시즌 2로 만들겠다는 ‘예고편’으로 읽혔다면 과민할 걸까. 맥락이 무시된 비판과 뜬금없는 의혹 제기와 누군가 깃발을 들면 기자들이 이리떼처럼 몰려들어 물고 뜯던 ‘마녀사냥’이 재현될 거라는 전조로 읽혔다면 기우일까.
나는 지금 기자들이 언론의 윤리를 성실하게 준수하면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을 걱정하고 있다. 언론 윤리가 독자들을 홀리는 언론사의 장식품이 아니라 혹세무민의 여론 조작질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본연의 기능을 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자들이 더 이상 ‘기레기’라 불리지 않게 되기를. 이재명 정부 5년은 언론이 언론답게 정상화되는 시간이 되기를. 그것이 기자로 살아온 나의 소망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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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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