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丙午年)이 밝았다. 말의 해는 예로부터 역동과 도약, 그리고 새로운 길을 향한 용기를 상징해 왔다. 멈춰 서 있기보다 달리고, 주저하기보다 방향을 정하는 해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 새해의 문턱에 서서, 지난 시간을 차분히 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담대하게 맞이할 각오를 나누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세계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고, 경제의 기초 체력은 흔들리며, 기후위기와 인구위기 같은 구조적 문제는 일상의 그늘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역은 수도권 집중이라는 오래된 난제와 싸우고 있고, 공동체의 신뢰는 곳곳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더 진지하게 불러내야 한다.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끝에 선택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병오년은 불(火)의 기운과 말(午)의 기상이 만나는 해다. 불은 태워 없애는 힘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고 길을 드러내는 에너지다. 말은 혼자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동반자다. 이 상징을 오늘의 우리 삶에 대입해 보면 분명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불씨를 지피고, 그 불씨를 연결해 공동의 길을 밝히는 것, 그것이 2026년을 맞는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
새해의 희망은 거창한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일터에서의 성실함, 이웃을 향한 배려, 지역을 생각하는 선택 같은 작은 실천에서 자란다. 기술과 산업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혁신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감내하며 한 걸음씩 쌓아 올린 과정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의 손을 잡고 끝까지 밀어붙일 용기다.
특히 지역의 미래는 선택의 연속이다. 떠나야만 기회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남아도 꿈을 키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행정이나 정치만의 과제가 아니라, 지역에 사는 모든 이의 몫이다. 청년에게는 도전할 무대가, 어른에게는 존중받는 일상이,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내일이 보장되는 사회를 향한 합의가 필요하다. 병오년은 그 합의를 행동으로 옮길 적기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연대의 가치다. 위기의 시대를 건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대화를 멈추지 않고, 이해관계가 달라도 공동의 이익을 찾으려는 노력이 쌓일 때 사회는 앞으로 나아간다. 말이 앞만 보고 달리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듯, 우리 역시 속도보다 방향과 균형을 점검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오늘의 편의가 내일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성장의 방식과 속도를 점검해야 한다. 기후와 환경, 안전과 노동, 교육과 복지는 서로 분리된 의제가 아니다. 하나를 외면하면 다른 하나가 흔들린다. 지속가능한 사회란 단지 오래 버티는 사회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는 사회다. 병오년의 불꽃은 그런 전환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도전에는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실패를 낙인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고, 경험을 자산으로 전환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혁신은 일상으로 스며든다. 말이 넘어졌을 때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은, 그 길 위에 다시 일어설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희망을 말하는 일이 결코 쉬운 선택만은 아니다. 희망은 때로 책임을 요구하고, 그 책임은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해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경기 회복의 속도는 더디고, 민생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 사회적 갈등은 해소되기보다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고, 불신은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에 병오년의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 위에서만 단단해질 수 있다.
특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희망’이 아니라 ‘참여의 희망’이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의 일부가 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오는 6월에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시민의 한 표, 소비자의 한 선택, 언론의 한 문장, 행정의 한 결정이 모두 사회의 방향을 바꾼다. 병오년은 그 작은 선택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2026년은 이미 시작되었다.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풍경을 바꾼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다시 개인의 삶을 밀어 올린다. 병오년의 말발굽 소리가 힘차게 울리도록, 우리 각자가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달리자.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 세우고, 지치면 잠시 숨을 고르며 다시 방향을 잡자.
이 신년의 문장에서 약속하고 싶다.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되, 가능성의 문을 닫지 않겠다고. 비판하되 냉소하지 않고, 기대하되 무책임하지 않겠다고. 독자 여러분과 함께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겠다고. 병오년의 새 아침에 이 다짐을 가슴에 새긴다. 2026년, 우리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과 용기, 그리고 서로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