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적 취소 어렵다”는 변명 뒤에 숨은 행정의 안일함
- 6조 원대 초대형 사업을 감당할 실질적 자금·시공 능력이 있는지 객관적 사후 검증부터 착수하라
전주시가 옛 대한방직 터 복합개발 사업시행사인 ㈜자광과의 ‘약속’을 다시 연장해 주었다. 자광이 전주시와 맺었던 ‘1년 내 착공’ 협약 기한을 어겼지만, 전주시는 사업 승인 취소 대신 법적 소송 리스크와 주택법상 규정을 들며 조속한 착공을 독려하는 수준에서 사태를 단락 지었다. 자광이 요구했던 ‘동별 사용검사(단계별 준공)’ 편법에 선을 긋고 ‘동시 착공·동시 준공’ 원칙을 재확인한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전주시의 대응을 바라보는 도민과 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행정이 정작 명확히 대답해야 할 본질적인 질문을 외면한 채 슬그머니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핵심은 당장 사업을 취소하느냐 마느냐의 법리적 결론이 아니다. 전주시가 상위법인 주택법 구조상 즉각적인 사업 취소가 어렵다고 판단한 행정적 고충과, 시행사 자광이 총사업비 6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을 실현해 낼 실질적 ‘이행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전주시는 첫 번째 질문인 ‘법적 취소의 불가피성’에는 마지못해 답했는지 몰라도, 정작 시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두 번째 질문, 즉 ‘자광의 이행 능력 검증’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명확한 답도 내놓지 못했다. 바로 이 지점이 전주시 행정의 가장 날카롭고 치명적인 허점이다.
생각해 보라. 자광이 470m 높이의 초고층 관광타워와 3,500여 세대 아파트, 호텔, 복합쇼핑몰을 동시 착공·동시 준공하겠다며 호기롭게 내건 사업은 6조 원이라는 거액의 자본이 동입되어야 하는 사상 최대의 지역 개발 프로젝트다. 그러나 협약 체결 1년이 지나도록 자광은 시공사 선정조차 마무리 짓지 못했고, 자금 조달에 심각한 난항을 겪으며 지방세와 공유재산 대부료 수십억 원을 체납해 전주시로부터 재산 압류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이 빙하기에 접어들고 건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금융권과 대형 건설사조차 선뜻 손대지 못하는 6조 원대 공사를 중소 시행사에 불과한 자광이 과연 무슨 수로 수주하고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단 말인가. 전주시가 “법적으로 당장 취소할 수 없다”며 기한을 연장해 준 순간, 시장과 도민들이 원한 것은 단순한 '촉구 공문' 발송이 아니었다. 과연 자광이 제출한 자금 조달 계획서가 금융권의 실질적인 확약서에 기반한 것인지, 시공 타당성이 검증된 대형 건설사와의 책임준공 도급계약이 실제로 임박했는지 행정이 눈으로 확인하고 검증하는 작업이었다.
행정은 시장의 무모한 환상이나 시행사의 말뿐인 호언장담을 추인해 주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법적 취소 요건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자광에 사실상 유예기간을 부여했다면, 전주시는 그에 상응하는 '강력하고 객관적인 사후 이행 능력 검증 절차'를 즉각 가동해야 했다. 자금 조달 증빙 서류와 시공사 금융 확약서, 공사 이행 보증 등 구체적인 물증을 제출받아 외부 전문가와 검증단을 구성해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사업에 묶인 전주 시민과 지역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검증 없는 기한 연장은 필연적으로 더 큰 재앙을 부른다. 만약 자광이 시간을 벌어놓고도 끝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거나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이 공중분해되거나 공사 도중 멈춰 선다면, 도심 한복판의 귀중한 땅은 기약 없이 방치되고 그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피해는 온전히 전주 시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때 가서는 또 다시 주택법 핑계를 대며 법령 뒤에 숨을 것인가.
전주시는 지금이라도 당장 자광의 실질적 사업 이행 능력을 객관적이고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공공 검증 테이블을 차려야 한다. 자광 역시 '동시 착공 기술 검토를 마쳤다'는 수준의 말뿐인 언론 플레이를 멈추고, 자신들의 재정 건전성과 시공사 계약 상태를 명명백백한 데이터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취소보다 먼저여야 했던 것은 검증이다. 사업자의 부실한 자생력을 눈감아준 채 시간만 끌어주는 행정은 ‘협조’가 아니라 ‘방관’이자 ‘직무유기’다. 전주시가 진정 지역의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자광의 손에 쥐어진 수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엄정하게 가려내는 칼을 빼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