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이니셔티브의 성공을 바라는 단상(2)
    • 이문기 /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 이 두 이론 중 초국가적 근접성 이론의 경우 한국 민족의 특수성보다는 세계적 보편성에 더 주목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류의 성공과 관련하여 한국민족 고유의 특성과 정체성을 더 잘 반영하는 개념은 문화혼종성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 및 한국문화의 이런 특성은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민족성으로부터 연유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한반도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중간지대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근대 이전 시기에는 주로 북방 유목민족과 중화문명 사이에서, 그리고 근대 이후에는 대륙 문명과 해양 문명 사이의 중간지대에 위치했다. 이런 중간지대 성격으로 인해 한반도 국가는 역사적으로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가지 정체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나는 지정학적 충돌의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지리문화적 융합의 정체성이다. 전자가 안보 문제와 직결된 위기의 측면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문화적 역동성을 강조한다. 주변 양쪽의 이질적인 세력이 충돌할 때 한반도는 삼각구도의 위기 구조에 빠져들고, 우리 민족은 생존을 위해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고도의 긴장감과 균형감각을 요구 받는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긴장감 속에서 유지되는 치열한 생존본능이 독특한 융합문화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이질적인 문화와 세계관이 충돌할 때 내적으로 극심한 갈등과 균열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또한 외부로부터 유입된 이질적 문화 요소들과 한국적 고유성이 뒤섞이면서 새로운 혼종문화를 창조하기도 한다. 고 이어령 선생은 문화지리적(geoculture)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전통문화는 북방 유목문화와 남방 농경문화가 뒤섞여서 형성된 것이며, 근대 이후에는 대륙문화(혹은 동양문화)와 해양문화(혹은 서양문화)가 뒤섞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은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문화 요소들을 수용할 때 양자택일적이기보다는 포용과 융합의 기호체계에서 양단불락(兩端不落)의 가치관과 문화양식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민족은 타문화와의 관계에서 편협한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또한 고유문화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는 이웃국가인 중국과 일본의 강한 자문화 중심주의와 대비되는 한국 민족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류의 성공은 우리 민족성에 깊이 뿌리박힌 문화융합의 정체성이 폭발적으로 활성화하면서 얻은 성취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지금에야 한류가 융성하고 있는가? 한반도가 중간지대 국가로서 갖는 융합문화 정체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말이다. 그것은 최근 약 150년 동안의 한국 근현대사가 우리 역사상 중간지대 국가로서 받는 압박과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는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생존압박에 시달려 온 시기였고, 서로 다른 이념과 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해 온 문화격변의 시대였다. 그 발현이 한편으로는 삼각관계의 함정에서 발생하는 지정학적 위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혼종문화가 탄생하는 문화적 역동성이다. 한류의 성공은 21세기 들어와 후자의 측면, 즉 중간지대 국가의 문화융합 정체성이 폭발적으로 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 분야에서 먼저 개척한 글로벌 주도권을 여타 분야에서 이어받고, 국가적 차원에서 분야 간 협력을 실현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상이 K-이니셔티브 정책이다. 그 성공을 위해서는 중간지대 국가 한국의 융합문화 정체성이 갖는 강점을 여타의 분야로 파급·확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각종 산업 분야를 비롯해서 외교, 관광, 교육, 학술 등 많은 분야에서 전개되는 K-시리즈 열기는 이런 열망의 반영이다.

      그런데 접두어 ‘K’를 관성이나 유행에 따라 붙이고 남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개념의 남용은 자칫 그 본래의 가치를 퇴색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접두어 ‘K’는 한류의 성공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각자의 분야에 적용하여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창발성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질서는 패권의 공백기에 접어들고 있는데, 이를 설명할 때 ‘궐위의 시대’ 혹은 ‘G0 시대’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에서 언급했다는 “낡은 것은 갔는데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시대다.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기대는 곧 새로운 문명을 향한 갈망이라는 점에서 궐위의 시대는 문명전환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전환기에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중간지대 국가의 융합정체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도래한 듯하다. 식민지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다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한국은 여러 방면에서 중간지대 국가에 해당한다. 동양과 서양, 글로벌사우스와 글로벌노스, 그리고 근대문명사의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역량이 ‘K-이니셔티브 구상’으로 수렴되어 인류 공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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