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불문하고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는 이름만 ‘공부’일 뿐, 실제로는 관광성 외유로 변질된 지 오래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각종 편법과 비리가 반복됐음에도, 의원들은 늘 책임의 그물망을 피해 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북 곳곳에서 불거진 해외연수 비용 부풀리기 사건에서 경찰은 말단 직원과 여행사 대표만 검찰에 송치했고, 정작 실질적인 이득을 챙긴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아예 수사선상에서 빠졌다. 시민사회에서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성명에서 “경찰의 수사가 지방의회 의원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해외연수 항공료 부풀리기는 공무원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 의원들의 묵시적 요청이나 사실상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이 사무국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다시 말해, 말단 직원들은 권력자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약자였을 뿐이다.
그런데 경찰은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한 의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약자인 직원만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는 ‘강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약자에게만 가혹한’ 전형적인 ‘강약약강’ 수사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방의원들의 일탈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구조적인 병폐다. 고창군의회를 비롯해 전북도의회, 전주시의회 등 무려 11곳의 지방의회가 경찰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한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한두 명의 일탈이 아니라, 지방의회 전체에 뿌리내린 도덕적 해이이자 조직적 부패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의 혈세로 해외 관광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비용을 부풀려 사적 이익까지 취했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명백한 ‘권력형 비리’다. 그럼에도 의원들이 빠져나가고 말단 직원만 법적 책임을 지는 현실은 정의를 기만하는 처사다.
형법은 단독 범행보다 공동 범행을 가중 처벌한다. 그런데도 경찰은 공동 가담자의 범죄 구조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해외연수로 실질적 이득을 챙긴 자가 누구인가? 바로 지방의회 의원들이다. 이 간단한 진실조차 외면한 채 ‘꼬리 자르기’ 수사에만 매달린다면, 경찰은 스스로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권력의 방패막이’로 전락할 뿐이다. 시민사회가 분노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더 큰 권한을 가진 자는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의원들은 주민들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조례와 제도를 만드는 위치에 있다. 그만큼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오히려 권한을 이용해 편법을 일삼고, 탈법적 관행을 묵인하거나 조장했다면 그 죄질은 말단 직원보다 훨씬 무겁다. 시민사회가 연일 강력한 성명을 내며, 의원들을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식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두고, 시민단체들은 ‘지방의회의 자정 능력은 이미 바닥났다’고 선언하고 있다. 의원들이 자리에 연연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지방자치는 시민들의 신뢰를 송두리째 훼손하고 있다. 더 이상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힘 있는 자가 먼저 책임지는 사회, 그 단순한 정의의 원칙이 지켜지기를 요구할 뿐이다. 하지만 그 원칙마저 무너진다면, 시민들은 결국 거리에서, 투표장에서 직접 심판에 나설 수 밖에 없다.
경찰 또한 예외가 아니다. 지금처럼 꼬리 자르기에 급급하다면 경찰은 ‘권력 눈치 보기’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수사가 지방자치의 신뢰 회복을 위한 분수령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면죄부 사건’으로 기억될지는 경찰의 수사 의지에 달려 있다. 실질적 책임자에게 철저히 법적 책임을 묻는 수사야말로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나아가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 해외연수의 계획 수립부터 집행, 사후 결과 보고까지 전 과정을 시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독립적인 검증기구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연수 목적과 성과가 지역사회에 실제로 환원되지 않는다면 세금 낭비에 불과하다. 시민사회는 이미 이를 오랫동안 요구해 왔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적 과제가 되었다.
지방의회는 주민의 대표기관이다. 그러나 지금의 행태는 대표가 아니라 ‘특권 집단’처럼 보일 뿐이다. 의원들이 진정 주민을 위하는 공복이라면, 이제라도 스스로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시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사회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이번 사태를 끝까지 추적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단죄할 것이다.
이번 해외연수 비리는 단순한 행정 비위가 아니다. 시민의 신뢰를 짓밟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다. 경찰이 더 이상 강자에게 면죄부를 남발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그리고 지방의회가 주민의 이름으로 부여받은 권한을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익 실현에 쓰기를, 유권자와 시민사회는 준엄하게 요구한다.
상식과 정의를 무너뜨린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래야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 힘 있는 자가 더 큰 책임을 지는 정의로운 사회다. 그 당연한 원칙이 지켜질 때 지방의회도, 나아가 정치 전반도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번 수사가 그러한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