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힘으로 비판을 봉쇄하는 순간, 지방의회는 스스로 민주주의를 포기한다. 전주시의회가 정의당 한승우 의원의 본회의 발언을 문제 삼아 징계를 요구한 사건은 단순한 의회 내 갈등이 아니다. 이는 지방의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 즉 비판과 견제의 자유를 다수 권력이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비판의 내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들이대는 순간, 의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권력기관으로 전락한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분명하다. 한승우 의원의 발언은 특정 개인에 대한 사적 공격이 아니라, 전주시의회가 외면해 온 이해충돌 의혹과 윤리적 무책임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전주시의회 다수 의원들은 문제의 실체에는 침묵한 채, 이를 지적한 의원에게만 ‘지방자치법’ 제95조를 적용해 징계를 추진했다. 이는 법 조항의 취지를 왜곡한 선택적 적용이며, 공익적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징계 요구가 이기동 전 의장과 관련된 중대한 이해충돌 의혹 제기 이후에 추진됐다는 점은 사안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이 전 의장은 본인과 가족이 소유한 건설업체가 전주시와 다수의 수의계약을 체결해 감사원에 적발됐음에도, 별다른 책임 추궁 없이 의장에 출마해 선출됐다. 시민사회가 사퇴를 요구했지만 전주시의회는 아무런 정치적·윤리적 판단도 하지 않았다. 의회가 스스로의 윤리 문제 앞에서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전 의장과 가족이 전주경륜장 인근에 토지와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 시의원들이 경륜장 이전과 신축을 반복적으로 요구해 온 사실은 단순한 정책 제안의 범주를 넘어선다. 이는 명백한 이해충돌 가능성을 내포한 사안이며, 지방의회라면 마땅히 투명한 조사와 엄정한 윤리 판단을 선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전주시의회는 조사도, 설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승우 의원의 발언은 바로 이 침묵과 방조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시의회는 문제를 제기한 의원의 ‘표현 방식’을 문제 삼아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제95조는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의원이 주민을 대신해 권력의 남용과 부패 가능성을 드러내라고 존재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를 ‘모욕’으로 규정해 징계한다면, 앞으로 어떤 의원이 다수 권력과 관련된 의혹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징계 요구가 해당 의혹의 당사자를 포함한 다수당 의원들의 집단 발의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윤리심사를 가장한 이해당사자에 의한 자기방어이자 보복 조치다. 이런 구조에서 윤리특별위원회가 과연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윤리 제도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시민의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무너진다.
현재 전주시의회는 35명 중 30명이 단일 정당 소속인 일당 독점 구조다. 의장단과 상임위원회, 각종 특별위원회까지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견제와 균형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 결과 집행부와 의회를 둘러싼 각종 특혜와 불법 의혹 앞에서도 의회는 침묵했고, 내부 비판에는 징계라는 칼날을 들이대는 기형적 모습만 반복해 왔다.
지방의회는 다수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시민의 눈과 귀가 되어 권력을 감시하고, 불편하더라도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의회의 본령이다. 전주시의회가 지금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한승우 의원에 대한 징계 요구를 즉각 철회하고, 제기된 이해충돌 의혹에 대해 독립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또한 윤리특별위원회를 정치적 보복의 수단이 아닌, 시민 신뢰를 회복하는 장치로 되돌려야 한다.
비판을 징계로 눌러버리는 의회에는 민주주의도, 지방자치의 미래도 없다. 전주시의회가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특정 의원에 대한 탄압을 넘어 전주시의회 전체의 자격을 묻는 역사적 질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태는 전주시의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지방의회가 반복해 온 ‘다수결 만능주의’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수 의석을 가졌다는 이유로 절차적 정당성과 윤리적 책임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의회는 시민의 대표기관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보호막으로 변질된다. 특히 이해충돌 의혹처럼 공공성의 핵심을 건드리는 사안일수록, 더 엄격한 자기 검증과 투명한 공개가 뒤따라야 한다.
헌법이 보장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에게 특권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주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고, 권력 내부에서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내라는 요구다.
이런 역할을 수행한 시의원에게 징계를 들이대는 선례가 만들어진다면, 향후 의회는 ‘말하지 않는 것이 안전한 곳’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침묵하는 의회, 질문하지 않는 의원, 책임지지 않는 다수는 결국 지방자치를 껍데기로 만든다.
지금 전주시의회에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겸허한 성찰이다. 다수의 불편함보다 시민의 의혹이 먼저이고, 체면보다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이번 징계 논란을 계기로 전주시의회가 비판을 포용하는 민주적 공간으로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방어하는 폐쇄적 권력으로 남을 것인지가 분명히 갈리고 있다. 그 선택의 결과를 지켜보는 주체는 다름 아닌 전주시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