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0조 연기금 품은 전북, 금융산업 심장으로 뛴다
    • 김관춘 칼럼 / 주필
    • 1400조 규모의 연기금을 품은 땅, 전북이 대한민국 금융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세 차례 정권의 국정 공약으로 채택된 ‘제3금융중심지’의 꿈이 9년 여의 준비 끝에 마침내 결승선을 바라보고 있다. 2017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이전한 이후 시작된 전북의 금융 생태계 구축기는 좌절과 도전의 역사, 그 자체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북 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것은 국가 균형발전 정책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운용 기능만 지방으로 이전되고 금융산업의 심장은 여전히 서울에 남았다. 글로벌 자산운용, 투자은행, 법률·회계·데이터 서비스 등 핵심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된 채, 전북은 거대 연기금의 ‘외딴 섬’으로 존재하는 구조적 모순에 직면했다. 자산은 전북에 있으되, 산업은 서울에 있는 기형적 구조였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해법이 바로 ‘제3금융중심지’ 구상이었다. 서울이 종합 금융의 심장이라면, 부산은 해양·파생 금융의 거점, 전북은 자산운용과 농생명, 기후·에너지 금융이라는 차별화된 축으로 금융산업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기존 금융중심지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기능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국가 금융 전략의 다극화 모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17년 이후 세 차례 대통령 공약에 포함됐지만,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은 번번이 좌절됐다.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는 인프라와 금융 모델의 구체성 부족을 이유로 보류 결정을 내렸고, 기본계획에서도 전북은 제외됐다. 정치적 약속과 정책적 현실 사이의 간극이 전북 앞에 놓였다.

      좌절 앞에서 전북이 택한 것은 ‘뚝심 행정’이었다. 성과를 기다리기보다 조건을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글로벌기금관 준공, 금융빅데이터센터 구축, 전북테크비즈센터 개관, 금융혁신 공유오피스 조성 등 물리적 인프라가 차곡차곡 쌓였다.

      전북특별법에는 금융산업 육성 특례 조항이 반영됐고, 입지·설비·고용·교육훈련 보조금 등 촘촘한 인센티브 체계가 마련됐다. 전국 최초 핀테크 육성지구 지정과 한국핀테크지원센터 전북분원 유치는 디지털 금융의 교두보였다. 기금운용 전문 인력과 백오피스 인력 양성, 핀테크 벤처기업 육성은 생태계의 씨앗이었다.

      이러한 준비는 글로벌 금융권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전북도는 미국 뉴욕과 보스턴을 직접 찾아 세계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를 설득했다. 그 결과 글로벌 자산운용사 사무소 9곳이 전북에 둥지를 틀었고, BNY멜론 전주사무소 확장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국내 금융그룹들도 화답했다. KB금융그룹은 혁신도시에 ‘KB금융타운’을 조성해 자산운용·증권·AI 자산관리·보험센터를 집적하는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고, 신한금융그룹도 자본시장 핵심 거점 구축에 나섰다.
      올해 1월, 전북도는 금융중심지 지정 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혁신도시와 만성지구 일원에 국제금융센터, 금융혁신 클러스터, 주거·지원시설을 갖춘 복합 금융도시 구상이 담겼다. 자산운용, 농생명, 기후·에너지 금융을 특화하고, 새만금 해상풍력·신공항·AI 데이터센터와 연계한 금융 수요 창출 전략도 제시됐다. 금융위원회의 제7차 기본계획 심의를 앞두고, 전북의 10년 도전은 중대한 분수령에 섰다.

      기실, 전북이 금융중심지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청년과 일자리 문제다. 금융산업은 고임금·고부가가치 일자리의 핵심 산업이다. 자산운용, 데이터 분석, 리스크관리, 회계·법률 서비스, 핀테크 개발 인력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대표 직종이다. 전북에 금융산업이 뿌리내린다면 이는 인구 구조를 바꾸는 전략적 투자다.

      지방소멸 논의가 추상적 담론에 그치는 사이, 전북은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다. 금융중심지는 청년이 돌아오는 도시 전략이며, 대학과 연구기관, 스타트업이 결합하는 혁신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다. 농생명과 기후·에너지 금융은 전북의 산업 구조와 맞닿아 있어 지역 특화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지역에 청년이 돌아오지 않으면 산업도, 공동체도 지속될 수 없다. 금융중심지 지정은 전북의 생존 전략이자 대한민국 지방 정책의 시험대다. 전북이 성공한다면, 이는 다른 지방에도 적용 가능한 새로운 균형발전 모델이 될 것이다. 금융중심지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부르는 정책이며, 지방소멸을 멈추는 국가적 실험이다.

      전북 금융중심지 지정은 더 이상 지방정부의 요구사항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응답해야 할 국가 과제다. 세 차례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사안을 정부가 미루고 유보하는 것은 정책 신뢰의 문제이자 국가 약속의 문제다.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국회는 수도권 중심 금융 구조가 초래한 불균형의 비용을 직시해야 한다. 연기금이라는 세계적 자산을 지방에 두고도 금융산업 집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가 자산 운용 효율성 측면에서도 모순이다.

      금융중심지 다극화는 특정 지역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수도권 과밀로 인한 금융 리스크를 분산하고, 지방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드는 국가 전략이다. 정부가 전북의 도전을 외면한다면, 이는 지역 균형발전의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 이제 선택은 명확하다. 전북 금융중심지 지정은 국가가 이행해야 할 공약이자, 시대적 책무다.

      이제 남은 것은 결단이다. 1400조 연기금의 땅이 금융산업의 심장으로 뛰기 시작할지, 전북이 대한민국 금융 지도를 다시 그릴지, 그 답은 올해 내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전북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금융 전략을 결정하는 역사적 판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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