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호영의 응급실행과 정청래의 ‘선상 회의’, 야당의 자멸 속에 안주하는 민주당의 오만함
정치는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억울함을 달래며, 최소한의 인간적 예우를 지키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더불어민주당 전북지사 경선 과정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목격하며, 우리는 과연 이 당에 ‘사람에 대한 예의’가 한 줌이라도 남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2일, 경선 불공정에 항의하며 12일간 차가운 바닥을 지키던 안호영 의원이 끝내 저혈당 쇼크로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 동료 의원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끝내 단식장을 외면한 정청래 대표와 지도부의 행태는 비정함을 넘어 오만의 극치다.
안호영 의원의 응급실행은 현재 민주당이 처한 도덕적 파산과 ‘전북 패싱’의 상징적 사건이다. 단식 12일이라는 사투가 이어지는 동안, 당 지도부는 단 한 번의 면담이나 문안조차 없었다. 심지어 안 의원이 실려 나가던 그 날 아침에도 지도부는 현장을 지나치며 경남 통영으로 ‘선상 최고위원회의’를 떠났다. 동료 의원이 사경을 헤매는 농성장 앞을 지나치면서도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은 당 대표의 모습에 당내에서조차 “자괴감을 느낀다”는 탄식이 터져 나올 정도다. 지도부가 타 지역 유력 인사들의 호소에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유독 전북의 절규만 외면하는 것은, 전북을 언제든 짓밟아도 되는 ‘정치적 하청업체’로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번 경선 파행의 근본 원인은 당 지도부가 자초한 ‘고무줄 잣대’에 있다. 68만 원 대리비를 이유로 현직 지사인 김관영 후보를 단 12시간 만에 ‘기습 제명’하며 휘두르던 그 칼날은 왜 이원택 후보 앞에서는 무뎌졌는가. 제3자 식비 대납 의혹이라는 유사하거나 더 중한 혐의가 제기됐음에도 “문제가 없다”며 면죄부를 준 이중잣대가 결국 안 의원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김관영은 묻지마 제명, 이원택은 묻지마 구명”이라는 비아냥이 전북 정가를 뒤덮고 있는 현실은 민주당 경선의 공정성이 이미 사망했음을 선고하는 조종(弔鐘)이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이러한 여당의 폭거가 야당의 무능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어 유유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여야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치열하게 경쟁할 때 비로소 발전한다. 하지만 지금 야당인 국민의힘은 제 역할을 망각한 채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엄중한 시기에 장동혁 대표가 감행한 8박 10일의 소득 없는 미국 출장은 야당의 무신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심은 차갑게 식어가는데 지도부만 태평하게 태평양을 건너는 모습에서 국민은 절망한다.
국민의힘의 자충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리스크가 현실화된 시점에서도 ‘윤어게인’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과거의 그림자에 매몰되어 있으니, 여론이 야당에게 호의적일 리 만무하다. 야당이 정상적인 견제 세력으로 기능했다면, 여당 지도부가 감히 동료 의원을 병원으로 보내면서까지 이토록 오만할 수 있었겠는가. 야당의 자멸이 여당에게 오만한 배짱을 심어주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정치 민주주의의 후퇴와 전북도민의 자존심 상처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 전북 도민들이 느끼는 것은 단순한 지지 후보의 유불리를 떠난 깊은 배신감이다. 선거 때만 되면 ‘전북의 아들’을 자처하며 압도적인 표를 호소하던 이들이, 정작 전북의 리더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도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중앙의 계파 논리로 난도질하고 있다. 안호영 의원의 병원 이송은 중앙 정치의 횡포에 저항하던 전북 정치권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치하다가 끝내 비정한 침묵으로 일관한 지도부는 스스로 공당의 자격을 포기한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지금이라도 안 의원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무너진 경선의 정당성을 회복할 결자해지에 나서라. 야당의 무능에 기생해 불투명한 경선을 즐기는 비겁함을 버려야 한다. 불공정 논란을 뭉개고, 동료의 생명을 외면한 채 단행하는 경선 결과는 결코 도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정치는 신뢰이고, 신뢰는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시작된다. 여야가 날 선 경쟁을 벌일 때 정치는 숨을 쉰다. 전북을 소모품으로 여겨온 그 오만한 태도가 계속된다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도민들의 준엄한 심판이 민주당의 뿌리부터 흔들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