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2%의 거부, 소풍을 범죄 현장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 최준호 / 전북타임스 대표
    • - 천호성의 ‘사법 책임 분담’ 공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 초등교사 10명 중 9명 이상이 현장체험학습을 꺼리고 있다는 충격적인 성적표가 나왔다. 최근 초등교사노조가 전국 교사 2만 1,9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무려 96.2%가 현장체험학습 추진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매우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90.5%에 달했다. 이 압도적인 수치는 단순히 교사들이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기 싫어한다는 투정이 아니다.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교사들이 법적 책임과 악성 민원이라는 벼랑 끝에서 내지르는 비명이자, 곪을 대로 곪아 터진 대한민국 교실의 처절한 자화상이다.

      교사들이 이토록 현장체험학습을 기피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8%가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감’을 꼽았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고조차 교사 개인이 민·형사상 책임을 오롯이 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소풍을 떠나는 교사의 발걸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만큼이나 무겁고 두렵다. 여기에 37%에 달하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까지 더해지면, 현장체험학습은 더 이상 설레는 교육 활동이 아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다름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청과 정치권이 보여온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다.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교육청은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명분으로 현장체험학습을 적극 장려하지만 막상 사고가 터지면 교사 뒤로 숨기 바빴다. 교사가 학부모의 고소·고발에 시달리고 법정을 드나들 때, 교육청은 “안전 수칙을 철저히 준수했느냐”는 공문 한 장으로 책임을 회피해 왔다. 제도적 방패 하나 없이 교사의 선의와 희생에만 기대어온 그간의 교육 행정은 비겁함을 넘어 ‘교육적 폭력’에 가깝다.

      이런 가운데 최근 천호성 전북교육감 후보가 내놓은 ‘현장체험학습 사법 책임 분담’ 공약은 교육 현장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천 후보는 교사 개인이 감당해온 무거운 사법적·행정적 부담을 교육청이 전적으로 분담하는 공적 책임 체계 구축을 약속했다. 교사가 고소·고발을 걱정하며 소풍을 포기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고 발생 시 교사 개인이 아닌 교육청이 대응 전면에 나서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교실 붕괴를 막기 위한 매우 시의적절하고 구체적인 대안이다.

      이제 전북교육청과 지역 정치권은 이 엄중한 수치와 천 후보가 던진 정책적 제안 앞에 무거운 답을 내놓아야 한다. 말로만 “미래교육”을 외칠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인솔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방패를 만들어야 한다. 천 후보의 공약처럼 (가칭)전북체험교육센터를 설립해 업체 선정, 계약, 정산 등 복잡한 행정 업무를 교육청 차원에서 일괄 처리하고, 전문지도사가 안전 관리를 전담하는 '역할 이원화'가 시급하다. 그래야만 교사가 ‘안전 관리자’나 '행정원'이 아닌 ‘교육 설계자’로서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다.

      아울러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사고에 대해서는 교원의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학교 안전사고 처리 특례제’ 도입과 조례 제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조사에 참여한 교사의 92.5%가 사고 시 면책권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가장 시급하다고 응답한 대목을 교육 당국은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신뢰와 안전의 토대 위에서만 존재한다. 교사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인솔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계속되는 한, 학생들의 소중한 체험 기회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소풍과 수학여행이 학교에서 영영 사라지는 비극을 막으려면, 정부와 정치권은 즉각 법 개정에 나서고 전북교육청은 실질적인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학생들을 위해 참아달라”며 교사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천호성 후보가 제시한 공약처럼 교사의 안전이 보장되는 공적 시스템이 구축될 때 비로소 학생의 안전 역시 담보될 수 있다. 전북 교육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이들이라면, 96.2%의 교사들이 던진 이 슬픈 경고에 실천적인 행동으로 답하라.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고, 공교육의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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