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패싱’의 위선, 전북은 호남이 아닌가
    • 최준호 / 전북타임스 대표
    • 최근 포털과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른바 ‘호남 반도체 투자설’과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야합을 바라보는 전북도민들의 심정은 참담함을 넘어 모멸감마저 느끼게 한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가며 수백조 원이 호남에 투자될 것처럼 대서특필되었지만, 그 방대한 기사 어디를 찾아봐도 ‘전북’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론과 정치권이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호남’이라는 단어 속에서 전북은 철저히 지워지고 소외되어 있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북은 호남이 아니란 말인가.

      반도체와 같은 국가 첨단 전략산업의 천문학적인 자금 투자는 단순한 기업 유치를 넘어선다.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인구가 유입되며, 전후방 연관 산업이 동반 성장해 지역 경제를 통째로 바꿀 미래 먹거리가 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지역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전북에 이보다 더 절실한 기회는 없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을 흔드는 이 거대한 투자 담론에서 전북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유령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기사와 정치권이 말하는 ‘호남’은 철저한 위선이자 착시현상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말하는 투자처는 예외 없이 광주와 전남이다. 전북을 들러리 세워 ‘호남권 대형 유치’라는 명분과 정치적 덩치만 키워놓고, 실속은 자기들끼리 다 챙기겠다는 얄팍한 셈법이다. 전북의 안타까운 현실을 철저히 배제한 채 광주·전남의 이익만을 대변하면서 ‘호남’이라는 광역적 수사로 포장하는 것은 전북도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전북이 빠진 투자 계획이라면, 이제는 가식적인 ‘호남’이라는 단어를 집어치우고 정직하게 ‘광주·전남 투자’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돌이켜보면 중앙 정치권의 이러한 전북 소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정치권은 철저한 역학 관계와 표 계산에 따라 광주·전남에는 첨단 미래 산업이라는 거대한 ‘고기’를 덥석 던져주고, 참다못해 서러워 울어대는 전북에는 고작 푼돈 수준의 예산이나 생색내기용 ‘과자 부스러기’만 쥐여주며 달래왔다. ‘호남 형제’라는 달콤한 말로 전북의 희생과 양보를 당연시하면서, 정작 알맹이가 있는 핵심 먹거리를 나눌 때는 철저하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만들었다. 이번 반도체 투자 논란은 그 치사하고 불평등한 관행의 결정판이다.

      전북이 과연 반도체 산업의 변방으로 밀려날 만큼 인프라가 부족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전북은 대기업들이 탐낼 만한 압도적인 무기를 쥐고 있다. 광활하고 준공이 가시화된 새만금의 넓은 부지는 수도권이나 여타 지역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강점이다. 어디 그뿐인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최대 화두는 기후위기 대응과 RE100(재생에너지 100%) 달성이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펼쳐진 전북의 풍부한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자원은 전력 포화 상태에 직면한 수도권 클러스터를 대체할 유일하고 확실한 대안이다. 넓은 땅과 청정에너지라는 반도체 공장의 필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 바로 전북이다.

      조건이 완벽함에도 전북이 거론조차 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 지역의 정치권과 지자체가 중앙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철저히 무능했거나, 광주·전남 중심의 호남권 정치 역학 관계에 눌려 스스로 밥그릇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대기업 투자설을 군불 때듯 지피는 정치인들이, 정작 알짜배기 미래 산업을 논할 때는 전북을 소외시키는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묵과해야 하는가.

      대기업의 투자가 정치적 셈법에 휘둘리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 정치적 춤판에서조차 전북이 들러리로 소비되는 현실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전북은 광주·전남의 들러리가 아니며, 필요할 때만 덩치를 불려주는 정치적 도구가 아니다.

      이제 전북도민과 지역 사회는 ‘호남’이라는 허울 좋은 연대감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허울뿐인 호남의 넉넉한 품을 자랑할 때가 아니라, 우리 몫을 당당히 요구하는 냉정하고 영악한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새만금의 친환경 에너지 자원과 부지를 무기로 삼아, 전북만의 독자적인 반도체 및 첨단산업 유치 로드맵을 정부와 기업에 대고 다그쳐야 한다. 중앙 정치권에 기죽어 대기업의 ‘전북 패싱’을 방관하는 지역 정치권에도 매서운 회칙을 들어야 한다. 전북의 미래 먹거리를 지키고 저널리즘의 바른 눈으로 권력을 감시하는 것, 그것이 전북타임스가 오늘 이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위선적인 호남론’을 격렬히 비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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