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역 부실 논란? 이게 ‘국제 엑스포’인가
    • 최준호 / 전북타임스 대표
    • - ‘유령 부스’ 논란 이어 ‘통역 마비’까지
      - 국제적 망신 산 관제 행사, 예산 집행 내역 정밀 조사하고 위탁 대행사와 담당 공무원에 엄중한 책임 물어야



      국제 엑스포 현장에서 차마 눈을 두고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졌다. 도내 중소기업의 해외 판로를 개척하겠다며 화려하게 막을 올린 수출상담회장에 전문 통역사가 배치되기는커녕, 현장 운영요원과 담당자들이 스마트폰 번역기 앱을 켜고 외국인 바이어와 대화를 나누는 초유의 파행이 발생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화학·바이오·기계 등 고도의 기술적 이해와 정교한 단가 협상이 오가는 공식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 스마트폰을 중간에 두고 단어를 읊조리는 모습은 ‘국제 엑스포’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붙이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본지가 앞서 지적했던 ‘유령 부스’ 사태에 이어 발생한 이번 ‘통역 마비’ 파행은 대형 국제·지역 행사의 총체적 부실과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민낯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작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 소프트웨어인 ‘전문 통역 인프라’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것이다. 외국 바이어들에게는 ‘아마추어 행정의 극치’로 비쳐졌을 것이며, 도내 중소기업들에게는 그야말로 (international shame) 국제적인 망신을 안겨준 셈이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이번 파행으로 인한 피해가 온전히 도내 중소기업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이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라는 이중고 속에서 해외 판로 하나를 뚫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시제품을 준비하고 밤을 새워 기술 자료를 만든 도내 스타트업과 향토 기업들은 현장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바이어에게 우리 제품의 핵심 매커니즘과 우수성을 정교하게 설명해야 할 순간에 스마트폰 번역기가 엉뚱한 단어를 내뱉으며 대화가 끊겼고, 결국 바이어들은 조소 섞인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도민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하기는커녕, 어렵게 찾아온 비즈니스 기회마저 행정의 불성실함으로 날려버린 기만행위다.

      이번 ‘번역기 엑스포’ 사태의 근본 원인은 예산 절감이라는 핑계 뒤에 숨은 행정의 안일함과 이벤트 대행사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전체 행사 예산 중 해외 바이어 유치 및 전문 통역원 인건비로 책정된 예산이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문 통역사를 고용해야 할 자리에 만약에 사전 교육조차 받지 않은 일용직 알바나 미숙한 요원을 대거 배치하여 인건비를 삭감하고, 그 차액을 대행사의 호주머니로 챙긴 것은 아닌지 강한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이번 사태를 결코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 먼저 전북도 감사실은 해당 행사의 입찰 과정부터 예산 정산 내역, 위탁 대행사와의 계약 이행 여부를 정밀 감사해야 한다.

      전문 통역원 배치 기준을 위반했거나 부실 인력을 투입해 계약을 위반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해당 대행사에 대해 즉각적인 용역비 환수조치는 물론 향후 도내 공공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아울러 현장에서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하고 엉터리 운영을 방관한 담당 공무원과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나아가 행사 직후 전북도가 발표할 ‘수출 상담액’과 ‘계약 추진 실적’이라는 허구의 숫자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통역이 마비되어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 현장에서 도대체 어떤 근거로 수천만 달러의 상담 성과가 집계되는지, 그 ‘성과 뻥튀기’의 실태를 도민 앞에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지자체가 추진하는 국제 행사는 지역 기업의 사활이 걸린 전쟁터다. 그 전쟁터에 장수들을 보내면서 칼과 총 대신 번역기 앱 하나 쥐여준 전북도정의 무능과 무책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껍데기뿐인 행사로 성과표만 채우려는 관제 전시 행정을 지금 당장 중단하라. 도민의 세금은 행정의 치적 잔치가 아닌, 지역 기업의 진짜 생존을 위해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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