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라지 않아야 자유다
    • 곽보경 / 작가·前 국회정책연구위원
    • 그리스 크레타섬의 도시 이라클리오. 오래된 성벽 위에 소박한 무덤 하나가 있다. 나무 십자가와 비석 하나가 전부다.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크레타섬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다. 잠시 장관을 지낸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평생 답을 찾아 헤맸다. 니체를 읽고, 예수와 붓다를 공부하고, 레닌의 혁명에도 마음이 기울었다. 그 오랜 방황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 이 세 문장이다.

      소설 속 조르바에게는 실제 모델이 있다. 젊은 시절 카잔차키스는 광산 사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함께 일한 사내가 조르바다. 사업은 망했지만 작가는 그 사내를 잊지 못했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나 소설 속에 그를 되살렸다.

      소설에는 두 남자가 나온다. 한 사람은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지식인이다. 그는 늘 생각하고, 망설인다. 다른 한 사람이 조르바다. 그는 잘 먹고, 잘 마시고, 마음껏 사랑하고, 춤춘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지식인이 평생 찾던 답을 조르바는 이미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함께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공들여 세운 설비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둘만 남는다. 그때 조르바는 고기를 굽고 술을 따른 뒤 춤을 춘다. 늘 망설이던 지식인은 그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무너진 설비 앞에서 두 사람은 함께 웃으며 몸을 흔든다.

      이 묘비명은 요즘 사람들에게 특히 사랑받는다. 매일 아침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사람이 있다. 대출 이자 날짜를 달력에 적어 두는 사람, 퇴근 후에도 회사 메시지를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시간과 돈과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이 세 문장을 탈출구처럼 마음에 새긴다.

      그런데 한 번 더 읽어 보자. 첫 문장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이다. 자유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이 문장에서 멀어진다. 무언가를 바라면 그것을 잃을까 봐 걱정이 생긴다. 승진을 바라는 사람은 상사의 눈치를 본다. 집을 바라는 사람은 집값 뉴스에 밤잠을 설친다. 걱정은 곧 두려움이 된다. 바람과 두려움은 늘 함께 다닌다. 바람을 내려놓으면 두려움도 함께 내려간다.

      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니다. 내일에 거는 기대다. 먹고 싶고, 웃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까지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오늘의 기쁨은 마음껏 누리되, 내일의 보상에 오늘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눈여겨볼 점이 하나 더 있다. 세 문장 사이에는 '그러므로'가 없다. 바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 결과로 자유를 얻는다는 계산이 아니다. 자유는 노력해서 받아 내는 보상이 아니다. 기대와 두려움을 내려놓은 자리에 저절로 남는 상태다. '바라지 않아야 자유다'라는 이 글의 제목조차 어쩌면 또 하나의 셈이다. 카잔차키스의 비석에는 그 셈조차 없다.

      조르바를 보라. 그는 내일을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다. 그는 잃을 것을 세지 않았고, 그래서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날에도 그날 밤의 춤을 미루지 않았다.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오늘을 내일에 저당 잡히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대개 반대로 산다. 은퇴 후의 여유를 위해 오늘 저녁을 반납한다. 언젠가 떠날 여행을 위해 오늘의 산책을 건너뛴다. 자유는 늘 다음 달, 다음 해에 있다. 그렇게 미뤄 둔 자유는 잘 오지 않는다. 와도 그때는 누릴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조르바라면 아마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왜 오늘 춤추지 않는가.

      누구나 언젠가 삶을 마친다. 그날 내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더 넓은 집이나 더 높은 자리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 날 떠오르는 것은 승진한 날이 아니라 누군가와 늦도록 웃던 저녁일 것이다.

      성벽 위의 세 문장은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 둘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우리도 한 번쯤 조르바처럼 춤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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