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밤새 전북에 쏟아진 폭우는 그야말로 ‘물폭탄’이었다. 군산에는 296㎜, 익산 256㎜, 전주 190㎜ 등 기록적인 강우량이 관측됐다. 특히 군산 내흥동에서는 시간당 152.2㎜라는 관측 사상 최고치가 기록돼 기상청이 ‘200년에 한 번 발생할 확률’이라고 할 정도의 극한 호우를 확인했다.
짧은 시간에 집중된 폭우는 집과 도로, 학교, 철도까지 가리지 않고 피해를 남겼다. 주택과 마을은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한밤중에 대피해야 했다. 전라선 열차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최소화됐지만 전북 전체가 잠시 멈춰 설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름 장마뿐 아니라 가을에도 대형 호우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명백히 기후위기의 산물이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국지성 집중호우가 빈발하고 예상 불가능한 계절성 폭우가 일상화, 연례화되고 있다. 과거 ‘장마는 6~7월’이라는 고정 관념은 이미 무너졌다. 9월, 심지어 10월에도 장마 못지않은 폭우가 찾아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번 폭우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방재 시스템의 전면적 재점검이 필요하다. 하천 산책로, 국립공원 탐방로, 철도와 도로 등 주요 기반시설이 순식간에 마비됐다. 도와 각 지자체는 이미 정해진 장마 기간을 전제로 한 대응 체계를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365일 상시 대비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도시 저지대, 농촌 배수시설, 노후 하천 제방 등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다. 반복적인 대책 점검이 아니라, 구조적 보강과 상시 점검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예측과 대응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이번 폭우로 전북소방본부는 376건의 안전 조치를, 경찰은 398건의 피해 신고를 처리했다. 그러나 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인공지능 기반 예측 시스템, 실시간 침수 지도, 재난 알림 고도화 등 기술적 보완이 절실하다.
셋째, 지역사회와 시민의 안전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일부 주민은 갑작스러운 침수로 고립되거나 대피가 늦어졌다. 지자체가 아무리 대비하더라도 평소 ‘재난 훈련’과 ‘자율적 대피 의식’이 없다면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이 빠져선 안 된다. 전북을 비롯한 서해안 지역은 앞으로도 태풍과 집중호우의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SOC 예산 확보와 별개로, 기후적 특성을 반영한 ‘호남형 기후적응 종합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재난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안전망과 직결된다.
이번 폭우는 ‘가을 장마’라는 새로운 재난 양상을 우리 눈앞에 드러냈다. 더 이상 계절적 규칙에 안주할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비가 올 수 있다’는 전제를 넘어 ‘언제든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피해를 막는 길은 선제적 대비와 근본적 투자뿐이다. 이번 피해가 단순한 자연재해로 묻히지 않고 기후위기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