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봉사회 전북도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정하복 회장은 이렇게 다짐한다. 2006년 남원 지산봉사회 활동으로 첫 발을 내디딘 이후, 그는 줄곧 재난 현장과 지역사회 곳곳을 누비며 봉사 1만 시간을 채워왔다. 정 회장은 봉사의 시작을 “남을 도울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이후 남원시협의회장, 전북도협의회장까지 맡으며 발걸음을 넓혀왔고 지금은 5천여 명 봉사원과 200여 단위봉사회를 이끄는 수장으로 자리했다. 그의 발자취에는 굵직한 재난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2020년 섬진강 둑 붕괴로 수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을 때 그는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한 달 넘게 현장을 지키며 세탁 봉사와 급식 지원을 진두지휘했다. 사매2터널 화재, 남원의료원 화재 등에서도 누구보다 앞서 피해 주민들과 함께했다. 노란 조끼를 입고 땀을 흘리던 그의 모습은 봉사가 곧 대가 없는 헌신임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이처럼 현장을 지켜온 경험은 그에게 뚜렷한 철학을 남겼다. 정 회장은 “진정한 적십자운동은 기쁜 마음으로 남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북 적십자봉사회는 다문화가정 결연, 치매 예방, 취약계층 지원, 재난 구호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쉼 없이 달려왔다. 120년에 이르는 적십자의 역사 속에서 전북 봉사회가 보여준 실천은 지역사회의 인도주의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단체활동의 현실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최근 많은 사회단체들이 자율성을 잃고 보여주기식 행사에 머물면서 정직과 순수성이 흐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봉사의 핵심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에서 꾸준히 드러나는 정직과 투명성에 있다고 본다. 작은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투명하게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야말로 봉사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전북 적십자봉사회 운영에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약 5천 명의 봉사원들이 외부의 지시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회비를 내고 활동에 참여한다. 정 회장은 이러한 문화 덕분에 단체가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헌신과 신뢰를 공유하는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봉사회를 움직여온 원동력은 ‘청렴’과 ‘자발성’이라는 두 축이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남원에서 전주까지 오가며 현안을 챙기고, 행사장을 찾아 봉사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무거운 짐을 직접 나르며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 주변인들은 “진정한 행복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우리 사회는 큰 재해가 닥쳤을 때만 관심이 집중되곤 한다”며 “평소에도 재난 대비와 봉사, 기부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전했다. “여생을 마치는 날까지 적십자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재난의 현장에서, 또 일상의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걸어온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전북 곳곳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장정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