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가 ‘먹거리 숙의기구’로부터 도민이 직접 제안한 16건의 정책을 전달받았다. 이는 행정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도민이 스스로 지역 먹거리 의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참여형 거버넌스의 모범이다. 특히 지난 4개월간 다양한 계층의 도민 70여 명이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만들어낸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숙의기구의 정책 제안은 단순한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 지역 먹거리 체계의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 지역경제 순환 구조 강화를 동시에 고민한 실질적 대안들이다. ‘전북산 원물 기반 밀키트 개발’, ‘공공급식에 지역 농산물 확대 활용’, ‘못난이 농산물 판매처 확충’ 등은 모두 현장의 요구에서 출발한 생활 밀착형 정책들이다. 도민이 직접 겪는 불편과 지역 농가의 현실을 기반으로 한 제안이어서 그 실행 가능성은 행정이 만든 탁상공론보다 훨씬 높다.
이제 공은 전북도에 넘어왔다. 도는 숙의기구에서 전달받은 제안들을 형식적으로 검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각 부서별 실질적 검토와 더불어 먹거리위원회 등 심의 단계에서 ‘도민 참여 정책’의 취지를 살리는 실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제안된 정책이 행정의 서류 더미 속에 묻히는 순간, 도민들의 숙의와 참여는 헛수고가 된다. 숙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보다 ‘반영’에 있다. 행정이 이를 정책에 어떻게 녹여내느냐가 전북형 거버넌스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특히 이번 숙의기구는 전북 먹거리 기본조례 제17조에 근거해 출범한 공식 기구다. 즉,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화된 참여 구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도민 제안을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체계가 꾸준히 운영된다면, 이는 단순히 먹거리 분야에 그치지 않고 농정, 환경, 복지 등 다른 정책 영역으로도 확산될 수 있다. 도민이 정책의 주체로 자리 잡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전북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먹거리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지역 먹거리 순환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공급식의 지역 농산물 비율은 낮고 취약계층 먹거리 복지 정책도 현장의 체감도가 부족하다. 이제 도민이 직접 제안한 정책이 이 간극을 메우는 현실적 대안이 되어야 한다. 행정은 이를 단순한 ‘참여 성과’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정책 변화로 이어지도록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도민의 손으로 만든 16건의 정책 제안은 전북 먹거리 정책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도민 중심 행정’의 시험대다. 전북도는 숙의기구의 결과를 보고서로 접수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실행 가능한 과제부터 추진해야 한다. 또한 정책 반영 여부와 진행 상황을 도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신뢰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숙의기구의 활동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일깨운다. 정책은 위에서 만들어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도민의 삶의 경험과 요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전북도가 이번 제안을 통해 행정과 도민이 함께 정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모델을 세운다면 그것이야말로 전북형 참여민주주의의 가장 값진 성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