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은 독점적 수사권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 고상만 칼럼 / 인권운동가
    • 지난 10월 21일은 ‘경찰의 날’이었다. 1945년 해방 후 미군정청 경무국이 창설된 날을 기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는 ‘경찰 창설 80년’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더해져 더욱 거창한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우리나라 경찰은 정말 국민의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나. 이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

      1998년이었다. 전국연합 인권위원회에서 만 3년을 일하다가 그해 천주교 인권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해 10월 21일, 나는 ‘경찰의 날’을 맞아 민변, 민가협, 인권운동사랑방 등 대표적인 인권단체의 대표자 명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피고발인은 당시 경찰청장을 비롯하여 약 20여 명의 경찰관들이었다. 이 고발장은 예상보다 파급력이 대단했다.

      정부 수립 50년 만에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그 때에, 경찰 역시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며 ‘경찰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때에 인권단체들이 경찰청장 등을 대거 고발하니 언론이 비중있게 보도한 것이다. 그야말로 잔칫날에 재를 뿌려도 단단히 뿌린 것이다.

      고발장의 주요 내용은 ‘직권남용’ 혐의로 이들을 처벌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경찰은 탈옥범 신창원을 검거한다는 미명 하에 권총을 남용하여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28일 강도살인죄로 무기수 선고를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 1997년 1월 20일 탈옥했다. 이후 1999년 7월 16일 체포될 때까지 그는 907일간 경찰을 농락하며 갖가지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자 2년 6개월 탈옥 기간 중 13번이나 검거 기회를 놓친 경찰을 향한 국민적 비난이 들끓었다. 결국 경찰이 무리수를 저질렀다. 신창원 검거를 위해 총기 사용의 제한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하지만 신창원 검거 대신 늘어난 것은 국민의 피해였다. 그중에는 경찰이 쏜 총이 하교길 여고생의 허벅지를 관통시킨 사건도 있었다. 신창원도 아니고 도망치는 단순 절도범을 검거한다며 쏜 총알이었다. 술 마시고 자기 집에서 행패를 부리던 가장이 총에 맞고 숨지기도 했다.

      그 중 압권은 인파로 가득찬 백화점 안으로 도망간 절도범을 잡는다며 경찰이 쫒아 들어가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었다. 경찰의 총기 남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경찰의 날’에 경찰을 고발한 이유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더 빨리 왔다. 고발장을 제출한 그날 밤이었다. 경찰청 최고위층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경찰청사에서 조용히 면담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면담에서 경찰 수뢰부는 그동안의 총기 남용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했다. 인권단체가 총기 사용을 무조건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 경찰청 고위 관계자와 면담 과정에서 내가 당부했던 말은 “총기를 사용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경찰이 제대로 판단 할 수 있도록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도입하라”는 것이었다.

      범인을 제압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찰 장구를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이 최선의 방법인지 판단하지 못하여 벌어진 비극은 너무나 참혹했다. 지난 2001년 8월 1일 대전에서 발생했던 ‘세 모녀 인질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날 새벽에 침입한 강도는 자신의 손에 칼을 동여맨 채 30대의 아이 엄마 목을 겨누고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강도는 그렇게 인질극을 벌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함께 인질이 된 어린 두 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강도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강도를 흥분시킨 것은 출동한 경찰이었다. 대치 중인 상황에서 경찰은 인질범이 들으라며 “야. 너 찌를 수 있어? 찌르려면 찔러봐. 찌르지도 못할 거면서 뭐 하냐. 인마”라며 도발했다.

      결국 사건은 비극으로 끝났다. 경찰이 칼 들고 있는 강도의 손을 제압하려고 각목으로 내리친 것이다. 하지만 삭은 각목은 그대로 부러졌고 그 순간 칼은 아이 엄마의 목을 파고 들었다. 결국 아이 엄마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내가 잊을 수 없는 ‘대한민국 경찰의 무능한 순간’이었다.

      세월은 또 흘러 2021년 11월 15일, 국민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또 발생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던 건물에서 경찰의 잘못된 대응으로 부인은 범인에게 목을 찔렸고 남편과 딸 역시 부상을 당한 사건이었다. 이때 신고를 받고 출동한 50대 남경과 20대 여경이 피해자를 구하는 대신 ‘솟구치는 피를 보고 도망을 쳐’ 국민적 비난이 불같이 일어났다. 이후 두 경찰은 해임되었고 2024년 직무 유기죄가 인정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의 무능으로 벌어진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이처럼 총을 쏴야 할 때와 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찰, 강력범을 제압하기 위해 어떤 무기를 사용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경찰, 위기 상황 대처법을 익히지 못한 경찰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으면서 경찰 창설 80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경찰은 2021년 수사권 조정에 이어 2025년 검찰청 폐지 법안 통과로 당장 내년부터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권한을 부여받을 것이다. 그 늘어난 권한만큼 경찰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유능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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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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