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사회가 젊은이들을 대부분 공무원, 교사, 대기업 직원 같은 특정 직업만을 지망하도록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사실상 그들의 역량을 파괴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역량을 파괴하는 자살행위다.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일 패권국 지위를 누리던 미국이 급속히 몰락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과학기술 경쟁에서의 패배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은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이 이미 실전 배치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아직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군사 분야 과학기술이 북중러 같은 나라들보다 뒤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미국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진출하지 않고 있어서다. 불평등 사회는 사회를 분열하고 갈등하게 만듦으로써 사람들을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이기주의자가 되도록 강요한다. 불평등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이기주의적인 청년들은 이웃이나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으며, 국가나 민족을 위해 노력하거나 헌신하게 해주는 애국심도 없다.
그들은 오직 돈이 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이 신자유주의화되던 1980년대를 기점으로 오직 돈이 되는 직업으로만 몰려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총명한 젊은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직업에 관심이 있었다. … 그러나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여러 해 전부터 미국 최고의 인재들은 금융업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고, 갈수록 그 비율이 높아졌다. 수많은 인재들이 금융업에 몰려 있으니 그 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다.(스티글리츠, 조지프 지음/이순희 역, 『불평등의 대가』, 2013, 열린책들, 207쪽)
한 마디로 미국의 난다긴다하는 영재들이 다 금융업으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젊은 영재들은 자신의 좋은 머리를 사기질에 가까운 금융상품을 만들어 내는데 사용했고 그 결과 2008년에 미국발 금융 위기가 발발했다. 만일 미국의 영재들이 금융업이 아닌 과학기술 분야에 진출했더라면 그들은 쓸데없는 곳에다 재능을 낭비하지 않고 미국이나 인류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세계는 끔찍했던 금융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소송의 왕국인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법률가를 지망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연구들은 인구 대비 법률가 비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인재들이 과학이나 공학 같은 보다 혁신적인 활동 대신에 법률가로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경제의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다른 연구들은 인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법률가가 적은 나라일수록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위의 책 『불평등의 대가』, 211쪽) 이런 연구들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또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나 애국심 없이 오직 돈 되는 직업만 선택하는 것이 단지 개인적인 역량 박탈에 그치지 않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우리는 가장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실물 사업체 창업과 실물 기술발전, 실물 서비스가 아니라 금융계의 사기행위로 유인해왔다’(스티글리츠 조지프 지음/이순희 역, 『거대한 불평등』, 2017, 열린책들, 293쪽)고 개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중국과 인도와 경쟁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갖춘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충분히 교육시키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말에 우리에게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소라는 명성을 안겨준 기초학문 연구에 대한 투자는 중단되었다. (위의 책 『거대한 불평등』, 75쪽)
미국의 젊은 영재들이 거의 다 금융가나 법률가를 지망한다면, 한국의 젊은 영재들은 거의 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의사를 지망하고 있다. 가장 총명한 젊은이들이 과학기술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 국가는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미국과 한국 같은 불평등 사회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낙후되거나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역량 박탈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젊은이들이다. 나는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 나이가 젊은 세대일수록 공포와 불안이 심하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젊은 세대를 공포세대로 명명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보면, 젊은 세대가 가장 불안이 심한 세대라는 것은 그들이 가장 심하게 역량을 박탈당하고 있는 세대임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평등 사회는 젊은이들을 오직 돈이 되는 일만 하려고 하는 개인이기주의자로 만듦으로써 그들의 역량을 박탈하고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불평등 사회는 인간 역량을 박탈하고, 인간 역량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람을 말살하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다. 경제학에서는 사람을 ‘인적 자본’으로 부르는데,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장기 성장의 열쇠이다. 불평등 사회는 인적 자본을 가차 없이 파괴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 특히 과학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오늘날의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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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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