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외교의 거대한 시험장 10월 아펙 정상회의(2)
    • 오태규 칼럼 / 언론인
    • 한국과 중국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을 두고 "도중에 참배를 그만두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니까 상대가 기어오르는 것"이라는 폭언을 한 바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이후 자유주의 성향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100여 일 동안 3차례의 정상회담을 하면서 쌓아온 대일 실용 외교의 토대가 다카이치의 출현으로 여차하면 일거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물론 총리가 되기 전과 총리가 된 뒤는 정책이 달라질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압박이라는 공통의 과제가 있기에 총재 당선 전처럼 마구 달리지는 않겠지만 이 대통령이 최악의 일본 상대를 만난 건 분명합니다.

      일본보다 더한 위협은 미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 달러(한화, 492조 8700억 원)를 자기 주머니에 든 돈으로 간주한 채, 관세 협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을 지렛대로 국방비와 주한미군 주둔비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미국의 요구대로 한다면, 나라가 거덜 날 내용들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해온 한미동맹 중시, 미국 추수 일변도 외교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어떤 재앙이 초래됐을지 끔찍하기만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대통령은 이면 합의를 안 하고, 국익에 반하는 합의는 안 하며, 공정하고 합리적이 아니면 안 한다는 '3불 정책'을 천명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자와 얼룩말의 싸움에서, 한 사람의 지도자 힘으론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얼룩말 무리 전체가 힘을 합쳐 힘찬 발길질을 해야 겨우 사자의 횡포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마침, 미국 조지아주에 공장 건설을 해주러 간 한국 파견 노동자 300여 명을 노예처럼 쇠사슬로 묶어 질질 끌고 가는 미국의 야만 행위를 목격한 시민들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추석 연휴 기간에 만난 시골 촌로들마저 "미국이 우리나라를 마소 취급한다"라고 분개하는 지경입니다.

      저는 이런 시민의 각성을, '생활 반미'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이제까지 광주 학살에 군 동원 용인, 효순·미선 양 압사 사건, 윤금이 씨 살해 사건을 계기로 터진 반미 움직임이 좁은 범위에서 강렬하게 분출한 일과성 '정치 반미'였다면, 조지아 사태로 인한 반미는 넓은 범위에서 은근하게 지속되는 '생활 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활짝 타오르다 금세 꺼지는 불꽃보다 은근하게 오래 타는 숯불이 무서운 법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정치 반미에서 생활 반미로 변하는 한국의 민심을 활용해 트럼프 발 폭풍을 헤쳐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사정은 또 어떻습니까. 북한은 이재명 정권의 유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 때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또 핵보유국의 권리를 주장하며 비핵화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권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비핵화를 가장 뒤에 놓는 '동결-축소-해체'의 새 해법을 내놨습니다. 남북 관계도 문재인 정권 때의 '운전자'에서 '페이스 메이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선결적으로 풀어야 남북 관계도 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지만, 그래도 한국의 어깨 너머로 북한과 미국이 독주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습니다.

      중국과는 다소 호전 기미가 있으나 박근혜 정권 말에 배치한 사드 갈등과 윤석열 정권 때의 반중 정책의 여진이 아직도 여전합니다. 최근엔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본격화한 혐중 시위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어떤 나라에 대해 '반(反)'이라고 하는 접두어를 사용하는 것과 '혐(嫌)'이라고 말을 붙이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반일, 반미, 반중처럼 반은 그 나라의 구체적인 정책을 반대하는 의미가 강합니다. 혐중은 그 나라의 존재를 부정하고 얕잡아 보는 아주 모멸적인 행위입니다. 일본의 혐한 시위에 한국 사람이 분개하는 걸 생각하면 한국의 혐중 시위에 대한 중국 사람의 반응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혐중 시위는 중국과 관계 개선 차원이 아니라 인권 보호 차원에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차가워진 러시아와의 관계는 미국 눈치 때문인지 가장 뒷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지를 넓히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문제는 더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1일, 제77주년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세계 각지에서 협력과 공동 번영의 동력은 약해지고,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힘을 더욱 키워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발언 속에 한국 외교의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처한 사면초가의 상황을 타개하려면 무엇보다 주체적인 생각과 힘이 중요합니다. 그런 뒤에 동맹도 중시하고 가치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재명 정권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 구호의 앞뒤를 바꿔 '실용 중심 국익 외교'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용 외교를 하다 보면 국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만, 국익을 외친다고 반드시 국익이 오고 실용 외교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윤석열 정권의 가치 외교, 진영 외교가 좋은 반면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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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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