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가 2026년도 예산안을 확정하고 도의회 심의·의결을 앞두고 있다. 총규모는 10조 9,770억으로, 올해보다 2,492억(2.3%) 증가했다. 숫자상으로 보면 역대 최대 수준의 예산이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규모의 성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방향의 일관성과 실행의 힘’이다. 이번 예산이 진정으로 도민 삶의 변화를 이끌고 산업 전환의 실질적 완성으로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체감할 수 있는 성과 중심의 집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예산의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다. 첫째, 민생 회복. 둘째, 미래산업 생태계 강화. 셋째, 정주 기반 확충이다. 경기 둔화와 세수 감소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도는 ‘도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기조로 재원을 집중 배분했다. 이 방향은 분명 옳다. 그러나 방향이 아무리 올바르더라도, 예산이 실제 현장에서 ‘보이는 성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가치는 반감된다.
우선 민생 분야는 도민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영역이다. 전북도는 소상공인 금융지원, 청년 일자리, 골목상권 회복 등 생활기반의 회복에 예산을 집중했다. ‘전북 소상공인 든든보험’, ‘희망채움통장’, ‘육아안정 특례보증’ 등은 위기 대응형 정책으로 의미가 크다. 더불어 1조 7천억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은 소비 순환 구조를 복원해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할 것이다.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정책이 행정 편의적 집행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지원금 지급’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컨설팅, 기술혁신, 디지털 전환 등을 병행해야 한다.
미래산업 분야는 전북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결정적 고리다. 이차전지, 새만금, 바이오, AI 등 미래산업을 중심으로 전북은 지금 기술 실험 단계를 넘어 실증과 상용화, 투자 연계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도는 이차전지 고도분석센터 구축, 기술개발, 소재산업, 기업 역량 강화로 산업 전주기 생태계를 완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또 새만금에서는 수전해 수소생산 실증, 자율운송차 실증, 해양모빌리티 혁신허브 구축 등 ‘미래산업 테스트베드’를 현실화하고 있다.이 모든 구상이 성공하려면, 행정이 아닌 시장 중심의 혁신 생태계로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북은 수많은 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지만, 실제로 자생적 기업이 성장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진 사례는 많지 않았다. 단기 실적 중심의 국비 확보 경쟁, 과시적 사업 추진이 원인이었다. 이제는 행정이 주도하는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산학연이 함께 주도하고 민간 투자와 연계되는 개방형 플랫폼형 산업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
농생명 분야는 전북의 정체성이자, 미래 지속가능성의 근간이다. 도는 이번 예산에서 농산물 공동작업·상품화 기반 구축, 스마트농업 확산, 농식품 부산물의 기능성 소재 전환 등 ‘농업의 산업화’를 가속화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여기에 청년농 정착 패키지, 농생명산업지구 조성, 스마트팜 확산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농업정책은 ‘사업 수’보다 ‘결과의 지속성’이 더 중요하다. 각 시군별로 중복되는 사업과 형식적인 보조금 정책을 정비하고, 농민이 직접 참여하는 통합 거버넌스로 추진해야 한다.
이번 예산에는 문화·관광 분야의 변화도 눈에 띈다. 전북이 ‘찾는 관광지’를 넘어 ‘머무는 체류형 관광지’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이 본격화된다. 체류형 산악관광 콘텐츠, 유니크베뉴 발굴, 야간관광 특화도시 조성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북예술회관 어린이극장, 전주 스포츠가치센터 건립 등 생활문화 인프라 확충도 병행된다. 그러나 시설 확충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지속성’이다.
생활SOC, 보육, 의료, 재난 대응 분야는 도민의 삶과 직결된다. 반값 임대주택 ‘반할주택’, 청년부부 결혼비용 지원, 패밀리카 지원, 어린이집 필요경비 지원 등은 생활안정과 인구정책의 연결점을 만든다. 또한 권역심뇌혈관센터 상시 운영, 지역보건의사 순회진료, AI 기반 재난예방기술 등은 의료·안전망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시도다. 그러나 정책이 나열식으로 흩어지면 효과가 미미한 만큼 통합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 예산에는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 기반사업도 포함됐다. 국제 스포츠외교 네트워크 확장, IOC 대응자료 마련, 유치 명분 확보를 위한 연구와 홍보 전략이 예산에 반영됐다. K-컬처와 친환경·디지털 기반의 전북형 모델을 국제무대에 제시할 수 있다면, 이는 지역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결국 이번 예산은 ‘전북의 미래를 그리는 청사진’이자, ‘도민 삶을 바꾸는 실행의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예산의 크기는 이미 충분하다. 필요한 것은 정책의 완성도와 현장의 실행력이다. 도의회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재정의 효율성과 미래 투자 가치를 중심으로 심의해야 한다. 도 역시 정책별 성과 평가체계를 강화해, 도민이 변화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1조에 가까운 예산은 전북의 방향이고, 도민의 내일이다. 이제 전북은 ‘예산의 시대’에서 ‘성과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재정이 정책을 움직이고, 정책이 현장을 바꾸며, 현장이 도민의 삶을 바꾸는 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때, 이번 예산은 비로소 전북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