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은 왜 한덕수를 관용(寬容)하지 않았는가
    • 김관춘 칼럼 / 주필
    •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에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공직자의 퇴장을 묻는 가장 단정한 기준으로 널리 회자돼 왔다. 하지만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선택은 이 문장과 끝내 조우하지 못했다. 그는 멈출 수 있는 순간마다 한발 더 나아갔고, 물러설 수 있는 기회마다 권력의 가장 위험한 중심부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그 결과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재판부가 내린 징역 23년의 중형과 법정구속이라는 추상같은 결론이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전 총리 개인의 유죄를 선고한 사건이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와 일부 판사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이 누적시키며 키워온 사법 불신을 오랜만에 되돌려 세운 결정적 분기점이다.

      재판부는 특검의 구형보다 8년이나 무거운 형량을 선고하며 한덕수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정확히 판단했다.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자일수록 법 앞에서 더 엄격해야 한다는 헌법 원칙을, 문장과 형량으로 분명히 확인시킨 것이다.

      재판부가 규정한 한덕수의 죄과는 명확하다. 그는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질서 파괴 행위 앞에서 제동을 걸 책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방기했다. 국무총리로서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이라는 최소한의 절차조차 고의로 누락하거나 형해화하며 불법적 계엄 선포를 방조했다.

      나아가 사후적으로는 선포문 조작과 허위 공문서 작성에 가담했고 탄핵 심판 과정에서는 위증과 증거 은폐 시도까지 드러났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동조’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참여였다. 재판부가 이를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으로 규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재판부의 재판 태도다. 이진관 재판부는 정치적 파장이나 외풍을 고려하는 대신, 증거와 법리로만 사건을 해부했다. 상급자의 지시, 국가 위기라는 명분, 관행이라는 변명은 어떤 것도 불법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점을 단호히 배척했다. 이는 공직 사회 전반에 던지는 분명한 경고다. 헌법과 법률 위에 서는 권력은 없으며, 충성의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헌정 질서여야 한다는 상식을 사법 정의로 복원한 판결이다.

      12·3 내란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격으로 한덕수가 보인 행태는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는 국정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위헌·위법적 조치들을 정당화했고, 헌법재판관 임명이라는 명백한 책무를 외면했다. 국정의 공백을 메우기는커녕, 자신의 정치적 연명과 대권의 잔영에 집착하며 헌법적 책임을 사유화했다. 권한대행이라는 임시적 지위는 절제와 중립을 요구하지만, 그의 행보는 오히려 권력 욕망과 계산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번 판결의 역사적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다가올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수괴’ 혐의 재판과 김건희 관련 재판에 있어 중대한 법리적 기준점이 될 것이다. 사법부가 내란의 개념과 책임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는지, 고위 권력자의 행위를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선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무너진 법치가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자정의 신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번 판결은 공직자의 책임 윤리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다시 세웠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고위 공직자 범죄는 ‘시대적 상황’, ‘국정 안정’,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유독 관대하게 다뤄져 왔다.

      특히 대통령과 최측근, 권력 핵심부 인사들에 대해서는 법의 잣대가 한없이 느슨해졌다는 것이 국민의 뿌리 깊은 인식이었다. 이진관 재판부의 판결은 이러한 왜곡된 관행을 단호히 끊어냈다. 권한이 클수록, 자리가 높을수록 법적 책임은 더 무겁다는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비로소 현실의 판결문 속에 구현한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은 ‘책임 회피형 권력’에 대한 명백한 경고이기도 하다. 한덕수는 재판 과정 내내 자신을 조력자, 관리자, 중재자로 포장하려 했지만 재판부는 그 허울을 하나하나 벗겨냈다. 국무총리는 단순한 행정 관리자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할 최후의 방파제다. 그가 침묵하고 방관한 순간, 국가는 무너졌고 민주주의는 유린됐다.

      재판부는 이 침묵을 죄로 규정했다. 이는 앞으로 어떤 고위 공직자도 ‘몰랐다’, ‘막지 못했다’는 말로 헌정 파괴의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국민이 이번 판결에서 느끼는 안도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특정 인물의 처벌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사법이 아직 기능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 회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신뢰는 앞으로의 재판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만약 이 판결이 고립된 예외로 남는다면 사법 정의는 다시 냉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한덕수의 유죄 선고는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선 안 된다. 그것은 헌법을 배반한 권력자들이 반드시 마주하게 될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다. 사법부가 이 원칙을 끝까지 견지할 때, 비로소 12·3 내란은 역사 속 범죄로 완전히 봉인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최후의 보루는 여전히 헌법과 법률, 그리고 이를 집행하는 사법부의 양심이다. 서울중앙지법 이진관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그 양심이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국민들은 오랜만에 ‘법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가야 할 때를 알지 못했던 노욕(老慾)에 찌든 한 인물의 몰락을 통해, 사법은 비로소 제자리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이것이 바로 사법 정의의 복원이며, 우리가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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