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눈 제거 수술을 2500회 가까이 받고 약 7억 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례를 둘러싼 대법원 판단은 법리적으로는 분명하다. 이미 확정된 판결이 존재하는 이상, 동일한 사안을 두고 다시 계약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기판력’ 원칙은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판결의 안정성과 법적 신뢰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 역시 그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법의 판단과 별개로, 이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면, 2500회에 달하는 반복 수술과 그에 따른 거액의 보험금 수령은 누구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하루 걸러 한 번꼴로 수술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의료적 필요성보다 ‘보험금 청구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기에 충분하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한 개인의 행위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보험 상품 구조, 그리고 이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관리 시스템에 있다. 보험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다. 다수의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기반으로 소수의 사고를 보전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 균형이 깨질 경우, 그 부담은 결국 선량한 다수의 가입자에게 전가된다. 보험료 인상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보험사는 '부정 수급'을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법정에서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지점을 짚어야 한다. 보험사가 진정으로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하는 문제다. 계약 체결 단계에서의 심사, 반복 청구에 대한 모니터링, 의료 행위의 적정성 검증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사후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한 셈이다.
의료기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동일한 시술이 수천 차례 반복되는 과정에서 의료적 필요성과 윤리성에 대한 검토가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료 행위가 보험 청구와 결합되는 순간, 단순한 치료를 넘어 경제적 유인이 작동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관리와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도는 언제든 악용될 여지를 갖게 된다.
대법원은 “수술 횟수 증가가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증거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법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제도적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증거의 축적’이 시스템 이상을 보여주는 경고 신호였어야 한다. 법은 과거를 판단하지만, 제도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일탈 여부를 넘어, 보험·의료·감독 체계 전반의 구조적 허점을 드러낸다. 사후 처벌이나 소송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반복 청구에 대한 실시간 감시 시스템, 특정 시술에 대한 기준 강화, 보험상품 설계 단계에서의 리스크 통제 등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식이 작동하는 제도’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사회적 납득까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제도가 상식을 따라가지 못할 때, 그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이번 판결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면 그 제도는 이미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허점을 방치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