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때 상식을 배우며 자랐다. 유치원에서 시작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윤리와 도덕, 공동체 의식은 교육의 기본 축이었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의 이익을 우선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의심할 여지 없는 ‘옳음’이었다.
사해동포주의와 같은 개념 또한 비록 추상적일지라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면, 그러한 상식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식상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이, 책임보다 효율이, 과정의 정당성보다 결과의 유용성이 더 큰 가치를 갖는 듯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기보다, 왜곡된 방향으로 이끌린 측면이 크다는 점이다. 지도자의 판단 하나, 권력의 선택 하나가 사회 전체의 가치 기준을 뒤흔들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개인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혼란을 겪는다. ‘옳다’고 배운 것과 ‘현실적으로 맞다’고 여겨지는 것 사이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그 틈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봉사와 희생은 여전히 미덕으로 언급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계산과 효율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돕는 행위조차 손익을 따지는 기준 속에서 재단되는 현실은, 우리가 배워온 가치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모든 가치를 새로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된 기준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외부의 기준이 혼란스러울수록 개인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상식이 식상해지는 시대일수록, 그 상식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을 희생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결국 나 역시 그 공동체의 일부라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자연을 보호하라는 가르침 또한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현실적인 문제다. 우리가 배워온 가치들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더 절실히 필요한 기준일지도 모른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삶의 기준을 스스로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정해준 방향이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가치 위에 삶을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책임 있는 태도일 것이다.
상식이 식상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되묻어야 한다. 그것이 정말 낡아서 버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혼란의 시대를 견디는 가장 인간다운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