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지역 언론계에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제까지 펜과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앞에서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언론사에 사표를 던지고 특정 후보의 선거캠프로 직행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감시자가 아닌 열혈 ‘선거꾼’이 되어 표를 구걸하고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선봉장에 선다. 기자의 날카로운 펜대는 어느새 권력의 단맛을 좇는 확성기로 변질된다.
진짜 비극은 선거가 끝난 뒤에 벌어진다. 자신이 공을 들인 후보가 당선되면 이들은 대변인이나 공보관, 정무특보 같은 감투를 쓰고 행정관청의 요직으로 맹렬히 진입한다. 권력을 감시하던 주체가 단숨에 권력의 핵심 기관에 앉아 공무원 신분으로 언론 통제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반대로 후보가 낙선하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슬그머니 기존 언론사나 또 다른 매체로 복귀해 다시 ‘기자질’을 시작한다. 2년마다 돌아오는 총선, 대선, 지방선거 때마다 언론사와 정치권을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드는 이른바 ‘회전문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폴리널리스트는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합성어로, 언론인으로서의 명성과 영향력을 발판 삼아 정계나 권력 기관으로 직행하는 변절적 언론인을 비판적으로 부르는 용어다. 언론인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정계를 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선진 언론사들은 현직 언론인이 정계로 갈 때 서슬 퍼런 엄격한 제한을 둔다. 정치를 하려면 언론계를 완전히 떠나야 함은 물론, 정계 은퇴 후 복귀하더라도 최소 수년간은 정치나 행정 관련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냉각기’를 제도적으로 강제한다. 언론의 중립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벽이다. 반면 우리나라, 특히 지역 언론계의 현실은 참담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최소한의 유예기간도 없이 당선인의 ‘입’이나 공보관으로 곧장 직행하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며 매번 심각한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러한 직행과 회전문 행태가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쏟아낸 보도의 ‘순수성’을 통째로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공정하고 바른 보도를 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 줄 유력 정치인에게 부지런히 공을 들이는 기자의 눈에 객관적 사실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프레임을 짜고, 불리한 의혹은 덮어주며, 경쟁 후보에게는 가혹한 칼날을 들이대는 식의 편파 보도가 과연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들이 언론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특정 목적을 위해 펜을 휘두르는 순간, 독자와 도민들이 누려야 할 알 권리와 공론장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된다. 결국 이러한 기자들로 인해 저널리즘의 고고한 가치와 공정성이 통째로 훼손되고, 사회의 목탁이어야 할 기자가 대중에게 ‘기레기’라는 모멸찬 이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서 저널리즘의 최소한의 직업윤리나 부끄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라거나 "언론 경험을 살린 소통"이라는 해괴한 변명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자치단체장들 역시 자신들을 향한 언론의 비판 칼날을 무디게 만들고 홍보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밤낮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대다수 동료 기자들까지 도마 위에 올라 "기자들은 어차피 다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다. 언론계 전체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주범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 부조리한 관행은 이제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언론이 권력의 하수인이나 정계 진출의 대기실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민주주의의 보루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지역 언론계도 해외 선진국들처럼 뼈를 깎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선거 보도나 정치 취재에 관여한 기자가 정계나 자치단체 캠프에 진입할 때 엄격한 ‘취업 유예기간’을 갖도록 윤리강령을 법제화 수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또한 선거 패배 후 언론사로 복귀하려는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과 페널티를 부과해 다시는 언론계에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가야 한다.
스스로 권력의 품에 안겼다가, 필요에 따라 다시 감시자의 가면을 쓰는 이들에게 더 이상 저널리즘의 고고한 가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언론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권력에 취해 펜을 꺾고 시장 바닥을 기웃거리는 선거꾼 기자들을 과감히 솎아내고, 흔들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것만이 지역 언론이 살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지역 언론계가 부끄러운 관행을 청산하고, 권력 앞의 당당한 감시자로 거듭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