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인 고 박영근, 고향 부안에 '솔아문학예술관' 개관
    • 17일 변산면 산기마을서 개관식 개최…기념사업회 등 민간 주도로 건립
      '취업공고판 앞에서' 노동 문학 넘어 자본주의·환경 소외 짚어낸 생태 시 세계 조명
      방조제로 잃어버린 갯벌과 어촌 현실 고발… 첨단 기술 시대 인간 소외 경고 메시지 담아

    • 한국 최초의 노동 시인으로 평가받는 고(故) 박영근 시인(1958~2006)을 기리는 '솔아문학예술관'이 오는 17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 개관한다. 해당 시설은 박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재조명하고, 거대 자본과 개발 논리에 밀려 훼손된 지역 생태계의 비극을 기록한 그의 후기 시 세계를 도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 고향 변산에 마련된 300평 규모 추모·전시 공간
      솔아문학예술관은 박 시인의 고향인 부안군 변산면 산기마을 인근(산기길 10)에 총규모 300평(약 990㎡)으로 건립됐다. 박 시인은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등을 통해 노동과 민중의 삶을 노래했으며 신동엽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중앙 문단에서의 높은 인지도와 달리 고향 부안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친형인 박정근 솔아문학예술관 대표와 문학예술 동호인, 남성고등학교 동창생들이 자금을 모아 공간 개관을 추진했다.

      공간은 1층 박영근 시인 추모 문학관과 2층 박정근 문학예술 연구소 및 박지현 갤러리로 구성됐으며, 별채의 생활 공간과 게스트룸을 갖췄다. 17일 오후 4시에 열리는 개관식에는 정운천 전 장관, 권익현 부안군수 등의 축사를 비롯해 고순복 씨의 시 낭송, 히말라야시다 중창단 공연, 박영근 시비 제막 및 테이프 커팅이 차례로 진행된다. 주최 측은 화환을 정중히 사양하며, 행사장 내 주차장이 별도로 없어 주변 도로 갓길 주차를 안내하고 있다.

      △ 갯벌의 죽음과 어촌의 몰락… 새만금 방조제가 남긴 상흔
      이번 문학예술관 건립은 박 시인의 문학적 초점이 1980년대 노동 문제에서 1990년대 이후 생태계 파괴 현장으로 이동한 맥락을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시인은 고향 부안과 군산을 잇는 대규모 새만금 방조제 건설 현장을 지켜보며, 수많은 생명체의 서식지이자 정화 역할을 하던 갯벌이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으로 변하는 과정을 비극적 관점의 시로 기록했다.

      그의 시 '해창에서'는 갯벌 매립 공사장의 삭막한 풍경을 통해 자본의 논리에 밀려난 지역 공동체의 현실을 고발한다. 시인은 "갯벌을 메워 도시를 만든다고 / 덤프트럭들이 바다를 향해 쾅쾅 돌을 쏟아붓고 / 하루아침에 보상금 몇 푼에 바다를 내준 / 사내들이 갈 곳이 없어 / 지루하게 늘어선 횟집 앞을 서성거릴 때"라는 구절을 통해 삶의 터전과 정체성을 동시에 상실한 어민들의 방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정부가 약속한 화려한 도시 건설은 장기간 지연됐고, 보상금이라는 자본을 얻은 대가로 생업을 잃은 주민들이 주체성을 잃은 채 방치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 첨단 자본주의와 AI 시대에 던지는 경고
      솔아문학예술관 측은 박 시인이 새만금 개발 과정에서 포착한 '자연과 인간의 철저한 소외'가 대규모 자본 투자가 논의되는 현재의 지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제라고 강조한다. 최근 현대의 9조 원 규모 새만금 투자 발표 등으로 경제적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으나, 파괴된 생태계 정상 복원 문제나 도민의 주체성을 담보하는 근본적인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문학관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 기술이 생산의 주체가 되는 현대 산업 구조 속에서, 새만금 방조제 건설 당시 어촌 주민들이 겪었던 인간 소외 현상이 더욱 강도 높게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 시인의 생태시는 단순히 과거의 환경 파괴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대 자본과 기계 문명 속에서 영혼을 잃고 소외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예언적 경고로 풀이된다.

      △ 향후 학술 연구 및 지역 문화 거점화 추진
      솔아문학예술관은 개관을 기점으로 박영근 시인을 노동 시인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생태·서정 시인으로 재평가하는 학술 사업을 본격 전개한다. 박영근 기념사업회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각종 문학 세미나와 문화 활동을 정기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또한, 해당 공간을 내소사, 채석강, 고사포 해수욕장, 직소폭포 등 인접한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주요 관광 명소와 연계해 서해안 및 부안 변산 기행의 필수 문화 코스로 자리 잡도록 홍보 활동을 추진한다.

      박정근 솔아문학예술관 대표는 "이번 전시 공간과 시비 건립은 박영근과 고향 부안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고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며 개관의 취지를 밝혔다.

      /최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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