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한다, 30년 기자인데 언론 윤리를 몰랐다(1)
    • 송요훈 / 언론인

    • 고백할 게 있다. 기자로 30년 넘게 밥을 먹고 살았지만, 언론 윤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입사 이후 언론 윤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받으라는 지시나 권유를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기자로 살면서 내가 배운 언론 윤리는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우스개 삼아 들려준 ‘기자의 5대 금기어’가 전부였다. 거두절미하지 말라, 침소봉대하지 말라, 아전인수하지 말라, 견강부회하지 말라, 혹세무민하지 말라... 그것이 기자가 절대 해서는 금기사항이었고, 재치 넘치는 누구는 남이 기사를 쓴다고 줏대 없이 따라 쓰는 부회뇌동도 추가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면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낄낄거리곤 했었다.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지났을 때, 미드 을 보다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있었다. 드라마 속의 뉴스룸에선 제보자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혹시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검증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하는 취재원을 익명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혹시라도 불순한 의도가 있어 언론을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기자와 보도 책임자가 토론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다 얼굴이 화끈거린 건, 기자인 나는 현실에서 단 한 번도 그런 걸 목격한 적이 없어서였다.

      MBC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맡은 일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MBC 보도가 공정했는지 따져보는 일이었다. 그때의 MBC는 시청자들에겐 ‘엠빙신’이라는 조롱으로 불렸고, 신뢰는 땅바닥을 뒹구는 정도가 아니라 땅속으로 파고들었다는 자조가 팽배했었다. 손에 피 묻히는 일이라 꺼렸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 그 일을 맡고 말았는데, 막상 맡고 보니 큰 고민에 부딪혔다.

      그 고민이란 이런 거였다. 나는 어떤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하지만, 그 보도를 한 기자나 그 보도를 승인한 부장, 국장은 공정하다고 하면 무어라 반박해야 하는가. 혹시 정치공작을 하던 국정원 쪽에서 자료를 받아 보도한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취재원 보호를 내세워 밝힐 수 없다고 하면 뭐라고 추궁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다 퍼뜩 떠오른 게 미드 이었고, MBC는 노사 합의로 ‘방송강령’을 제정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방송강령을 뒤져보니 거기에 다 있었다. 취재와 보도를 할 때 기자들이 준수해야 하는 ‘보도준칙’이 있었다. 미국 드라마 에서 보았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과 제보자의 신뢰성을 검증해야 하는 이유와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보도의 원칙이 거기에 글자로 쓰여 있었다. 기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 글자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그 방송강령은 노사 합의로 제정되었기에 사규와 같은 효력이 있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다. 공정한 보도인가 하는 추상적 가치가 아닌 보도준칙을 지켰는가 하는 행위만 따져보면 된다고 생각하니 모든 고민이 일거에 해소된 것 같았다.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야 한다. 안 하면 불법이다. 경찰관 복무수칙에 의무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도준칙도 그렇다. 기자가 보도준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불법행위를 저지른 거나 마찬가지다. 검사는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때 그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나 자료를 같이 넘겨야 한다. 그것이 검사의 객관 의무다. 그러한 객관의 의무는 기자에게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가 각 부처의 업무 보고를 받던 중에 검찰과 방통위, 해수부의 보고는 도중에 중단시켰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떤 매체는 국정기획위가 보고하는 공무원들에게 호통을 쳤다느니 군기 잡기를 한다느니 갑질을 한다느니 하며 국정기획위를 비판한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검찰, 방통위, 해수부의 업무 보고를 중단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업무 보고의 내용이 부실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를 공약했는데, 검찰은 수사권을 놓지 않으려고 했단다. 윤석열 정권에서 방송과 방통위의 독립은 와해되다시피 했는데 방통위의 보고에는 반성도 개선 방안도 없었다 하고, 해수부의 업무 보고에는 부산 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사실상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같이 보도해야 독자들은 국정기획위가 업무 보고를 중단시킨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언론 윤리는 그런 보도를 ‘사실 보도’라 한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헌장에는 정확한 사실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달하고, 정보원과 취재 과정 등을 가능한 한 투명하게 알리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기자협회의 윤리헌장을 읽어본 기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보기에는 1%도 안 될 것 같다. 30년차 기자가 되도록 글자로 된 언론 윤리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나처럼.<계속>


      *  *  *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외부원고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s ⓒ 전북타임즈 & jeonbuktimes.bstor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확대 l 축소 l 기사목록 l 프린트 l 스크랩하기
전북타임즈로고

회사소개 | 연혁 | 조직도 | 개인정보보호,가입약관 | 기사제보 | 불편신고 | 광고문의 | 청소년보호정책 | 고충처리인 운영규정

54990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태진로 77 (진북동) 노블레스웨딩홀 5F│제호 : 전북타임스│ TEL : 063) 282-9601│ FAX : 063) 282-9604
copyright ⓒ 2012 전북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bn880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