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글쎄요,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은데요… 보통은 그냥 퇴사했죠."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N 드라마〈서초동〉의 한 장면이다. 임신 사실을 어렵게 꺼낸 여성 변호사와 이를 무심하게 받아치는 로펌 대표의 대화를 보며 많은 시청자가 묘한 기시감과 불편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맞아, 우리 회사도 그랬지’, ‘나도 나중에 저러면 어쩌지’하면서 말이다.
엄연히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출산‧육아 제도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일터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암묵적인 장벽 앞에서 많은 엄마, 아빠들이 상사에게, 때로는 동료들에게 눈치와 부담을 느낀다. 드라마보다 더한 대화가 현실에서 오고 간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귀농‧귀촌 지원부터 출산장려금, 결혼축하금까지 각종 인구정책을 시행하며 독려에 나서는 공공부문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일이 많으니까’, ‘대신 할 사람이 없는데’라는 이유로, 관련 지원책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식은 희석되곤 한다.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 육아휴직은 물론, 육아시간이나 모성보호 시간을 쓰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꽤 깊은 고민 속에서 용기를 쥐어짜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출산에 따른 여성의 고용상 불이익을 가리키는 ‘차일드 페널티(child penalty)’가 출산율 하락 원인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KDI포커스: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2024.4.) 경력단절이나 소득 감소, 승진 기회 상실 등이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결정적 장애물이라는 분석이다.
필자는 지난달 장수군의회 임시회에서 ‘다자녀 공직자에 대한 실질적 배려 방안’을 제안했다. 출산 친화적 조직문화를 조성하자는 큰 틀에서,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자녀 공직자에 대한 근무평정 가점 확대. 현재는 셋째 자녀부터 가점을 부여하지만, 최근 다자녀 기준이 2명 이상으로 바뀐 흐름에 맞춰 둘째부터도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다음은 근무환경의 유연성 확대다. 인사부서 내 상담 창구 운영을 통해 육아기 공무원의 고충을 듣고, 자녀 양육 여건을 고려해 근거리 부서에 배치하거나, 육아시간과 유연근무제 활용을 장려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상시 인력풀을 구축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물론, 이런 배려가 다른 구성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지 않도록 충분한 의견 수렴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출산 여부를 기준으로 선을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설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장수군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사망자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학교 폐교와 읍면 공동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지역소멸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개인에게 맡겨둘 수 없는 공동체 전체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인구 위기는 어쩌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주 5일제 근무도 한때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그러나 공공부문이 먼저 변화를 시작했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여 지금은 주 4.5일제까지 추진되고 있다. 고령화·저출산으로 인구소멸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공직사회가 다시 한번 변화를 이끌어준다면 어떨까? 우리 사회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불이익을 ‘아이 낳은 죄, 아이 키우는 벌’처럼 감내하던 시대를 건너왔다. 예전에는 말도 꺼내기 어려웠던 것들이 제도화되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제도와 문화 사이의 간극이 아직 존재한다. 출산율 걱정하는 정책이 없어도 출산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기 위해 이제 여기서 함께, 한 발짝 더 나아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