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증명된다. 절차가 공정해야 결과가 설득력을 얻고, 그때 비로소 권력은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최근 막을 내린 더불어민주당 전라북도지사 경선은 그 최소한의 원칙조차 처참히 무너졌다는 점에서, 전북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상처를 남겼다.
# 끝난 경선, 그러나 끝나지 않은 주권자의 분노
경선은 끝났다. 후보도 결정됐다. 하지만 전북도민의 마음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경선이 남긴 잔해 속에는 당선자에 대한 축하 대신 후보들을 둘러싼 부도덕과 불법 의혹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고, 미래를 향한 기대 대신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자리 잡았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앙금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절차가 무너진 자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불신이자, 주권자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한 이들이 뱉어내는 처절한 신음이다. 그 불신의 바닥에는 환멸이 고여 있고, 그 환멸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지고 있다.
이번 경선 과정을 돌아보면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정 인물에 대해서는 번개처럼 빠른 판단과 단호한 배제 조치가 내려졌으나,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침묵과 사실상의 면죄부가 이어졌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전혀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모습은 ‘원칙’이 아니라 권력의 ‘선택’이 작동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형평성이 무너진 순간, 중앙당의 그 어떤 결정도 공정하다는 명분을 얻을 수 없다.
# 중앙당의 오만과 지방자치의 종속
문제의 핵심에는 민주당 중앙당이 있다. 전북의 정치적 선택이 도민의 자율적 판단과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정무적 계산 속에서 좌우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의 본질을 뿌리째 흔드는 행위이며, 지역을 정치적 종속 변수로 취급하는 고질적인 오만이다.
민주당은 입버릇처럼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유일한 수호자라 자임해왔다. 그러나 이번 경선이 보여준 실상은 민주주의의 실천이 아니라 ‘훼손’에 가까웠다. 절차는 생략되었고, 소명은 부족했으며, 결정은 일관성을 잃었다. 행정의 속도는 중앙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나치게 빠르거나 납득할 수 없을 만큼 늦춰졌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 대한 진솔한 설명과 도민을 향한 설득의 자세가 전무했다는 점이 역겹기까지 한 대목이다.
# 사법부의 잣대를 비판하던 민주당의 ‘내로남불’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시감을 느낀다. 대선을 앞두고 조희대 사법부가 특정 후보자에게 내렸던 논란의 판결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판결의 속도와 타이밍, 그리고 절차에 대한 의문이 뒤섞였던 그 장면과 지금의 경선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내부 경선조차 이토록 불투명하고 편파적으로 운영하면서, 과연 민주당은 타인을 향해 정의와 공정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자신들이 자행한 ‘절차적 폭력’은 정무적 판단이라 강변하면서, 타인의 칼날만 비난하는 것은 지독한 자기부정이다.
특정 사안에는 과잉 대응이, 다른 사안에는 선택적 침묵이 반복돼 왔다. 법과 원칙은 존재하지만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기준은 원칙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정당성을 허무는 정당은 더 이상 공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기준이 권력의 향배에 따라 춤을 출 때, 그 조직은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왔다.
# 훼손된 정당성, 그 피해는 오롯이 도민의 몫
이번 경선의 본질은 단순한 후보 선출의 성패가 아니다. 바로 ‘정당성의 붕괴’다. 누가 후보가 되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도달했느냐다. 그 과정이 오염된 이상, 당선 이후의 도정 역시 끊임없는 의심과 냉소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정당성이 거세된 권력은 도민의 목소리보다 자신을 간택해준 중앙의 눈치를 먼저 살피게 마련이며, 그 행정의 왜곡은 고스란히 도민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전북은 오랫동안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그 지지는 결코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었다. 공정한 절차와 책임 있는 정치, 그리고 전북의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엄중한 신뢰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이토록 반복적으로 배신당한다면, 남는 것은 정치를 향한 차가운 냉소와 불신뿐이다.
# 이제 민주당 중앙당이 답할 차례다
민주당 중앙당은 이제라도 답해야 한다. 왜 같은 사안에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는지, 왜 절차적 정당성이 이토록 처참하게 훼손되어야만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경선 논란을 넘어 정당 전체의 신뢰를 전북에서 영구히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경선은 끝났지만, 책임은 끝나지 않았다. 선거는 치러질 것이고 누군가는 도지사 집무실에 앉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권력의 출발점은 이미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정당성이 훼손된 권력은 필연적으로 불안정하며, 그 불안정함은 전북의 미래를 위협한다.
지금 전북 정치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승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이다. 결과를 인정받고 싶다면 오염된 과정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다면, 이번 경선에서 드러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전북의 정치가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지금 도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환멸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균열과 심판의 파도로 되돌아올 것이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지키지 않으면 무너진다. 그리고 지금, 전북 정치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위태로운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전북의 자존을 되찾기 위한 도민들의 매서운 시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