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날은 간다
    • 배해수 / 무형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고고인류학 박사
    • 복날이 오면 으레 떠오르던 음식이 있었다. 시골 장터나 읍내 골목에는 사철탕집 간판이 걸려 있었고, 식당 안에서는 뚝배기마다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국물 한 숟갈을 뜨고 나면 기운이 난다며 사람들은 웃었다. 초복과 중복 무렵이면 “올해는 한 그릇 했느냐”는 말이 안부처럼 오갔다. 이제 그런 풍경은 오래된 사진처럼 희미해지고 있다.

      삼복은 농경사회가 만들어 낸 여름의 쉼표였다. 봄부터 이어진 모내기와 김매기, 끝이 보이지 않는 논밭일로 지친 몸을 추스르는 계절의 이정표였다. 궁궐에서는 더위를 이기라며 관리들에게 얼음을 내렸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대부분의 백성에게 복날은 햇볕 아래에서 버텨낸 노동의 시간이었고, 한 끼 보양식으로 다시 일어서는 날이었다. 지역에 따라 닭과 미꾸라지, 장어, 어죽 등 기력보충을 위해 먹었고 개고기도 여름 보양식의 하나가 되었다.

      복날 음식에는 미식보다 삶을 견디려는 절실함이 먼저 담겨 있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도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의 음식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형편이 스며 있다. 먹을거리가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과 풍요로운 시대의 식탁은 같은 잣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문화는 언제나 시대와 함께 만들어지고 시대와 함께 변한다.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개의 위치이다. 예전에 개는 마당을 지키고 들과 산을 뛰어다니던 집짐승이었다면, 이제는 가족이자 반려동물이다. 양말과 조끼를 입고 유모차를 타며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미용실을 다닌다. 사람보다 더 비싼 치료비를 기꺼이 감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졌으니 식문화 또한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래된 풍경 하나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복잡하다. 보신탕을 즐기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둘러앉아 땀을 식히던 여름 저녁이었고, 시장통에서 친구와 마주앉아 나누던 막걸리 한 사발의 추억이었다.

      음식 하나에는 맛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사람과 장소, 그 시절의 농담과 웃음까지 함께 담겨 있다.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풍습이 이어질 수는 없다.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면 문화도 변한다. 어느 문화든 생겨난 이유가 있었고, 사라지는 이유 또한 있다. 문화를 이해하는 일은 찬성과 반대를 가르기에 앞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 복날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사철탕집 간판이 내려간 자리에는 삼계탕집과 장어집이 들어선다. 음식은 달라졌지만 무더운 여름을 견디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년에도 복날은 달력 위에 다시 찾아올 것이다.

      짧은 봄날을 아쉬워 하는 ‘봄날은 간다’ 라는 노래 제목처럼, 이제 무더운 여름을 넘고자 했던 복날의 풍경도 간다. 한때 흔했던 말과 농담이 자취를 감추고, 음식 하나가 사라지는 자리에는 한 세대의 기억도 함께 멀어진다. 사라지는 문화일수록 오래 이야기하고 충분히 이해한 뒤 보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음식문화를 법으로 금지할 수 있어도 인간의 향수와 기억까지 금지할 수는 없다. 내년에도 달력에는 초복과 중복, 말복이 적혀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 복날의 풍경은, 그래서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쉬움이 여운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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