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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직업재활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조

부안읍 외곽 부안종합사회복지관 인근에 자리한 ‘바다의 향기(원장 조상완)’가 최근 ‘2016년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수 생산시설’로 선정돼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우수한 품질의 김 가공품 생산, HACCP·ISO9001 등 다양한 인증서 획득, 장애인근로자에 대한 양질의 일자리 제공, 장애인근로자와 일반 근로자 간 차별 없는 작업장 환경조성, 장애인의 직업훈련 및 고용전이, 문화 활동, 장애인식 개선 등 장애인을 위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으로 실천해 온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여타 장애인시설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된 장애인들의 복리증진과 인권보장을 위한 부단한 노력, 우수한 제품 생산·판매 등을 통해 진정한 자립시설로 거듭나고 있는 점 등이 이번에 또 하나의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걸으면 길이 된다”

 

바다의 향기는 김을 가공 판매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면서 사회적기업이다. (주)삼해상사 부안 줄포 공장에서 생김을 받아 가공한 완제품을 OEM 방식으로 대부분 삼해상사에 납품하고 있다. 서울에 본사를 둔 삼해상사는 ‘名家김’으로 잘 알려진 국내 굴지의 김 생산업체다.


바다의 향기는 그간의 삼해상사 납품 의존도에서 벗어나 지금은 홀로서기를 부단하게 시도하고 있다. ‘海味(해미) 김’과 지난해 8월 새롭게 선보인 ‘오디자반 김’이 바다의 향기 대표적인 자체 브랜드 상품이다. ‘해미 김’이라는 브랜드 하에 ‘식탁김’, ‘도시락김’, ‘돌김’, ‘재래전장김’, ‘김밥김’, ‘김자반’ 등 다양한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최신식 위생설비와 자동화된 생산시스템은 이곳만의 큰 자랑거리이다. 단순히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만들어 내는 제품이라고 선입견부터 갖는다면 큰 오산이다.


지난 2014년 7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위험성 평가 인정서’ 획득에 이어 그해 9월에는 ‘위해업소 중점 관리 기준(HACCP) 적용 업소’로 지정됐다. 둘 모두 대단히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인증들이다.


이곳의 비즈니스 모델은 독특하면서 신선하다. ‘김을 팔기 위해 (장애인을)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김을 파는 기업’, 이게 비즈니스 모델이다.


슬로건도 참신하고 아름답다. ‘우리가 걸으면 길이 된다’이다. 장애인들의 권리를 온전하게 되찾고 새로운 장애인 세상을 열기 위해 자신들만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 장애인직업재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장애인 관련 시설 분야의 삼성전자가 되겠다’는 당찬 꿈과 야망도 있다.

 

 

◆직원 55명 중 근로장애인이 34명…법정최저임금 보장

 

바다의 향기는 지난 2011년 1월 부안군에서 설립해 (사)부신정회(대표이사 유정호)에서 위탁 관리하고 있다. 당초에는 부안군장애인근로작업장으로 설치신고를 했다. 하지만 식품관련 시설에 ‘장애인’이라는 명칭이 크나큰 선입견으로 작용해 걸림돌이 됐다. 단순히 명칭 하나 때문에 판매에 적지 않은 장해 요인이 발생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공모를 통해 지난 2013년 1월 바다의 향기로 사업장 이름을 바꿨다.


이곳은 사무직원과 영업직원 등을 제외하면 근로능력은 있으나 일반기업에 취업이 힘든 중증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전체 직원 55명 가운데 근로장애인이 34명, 고령자도 7명이 근무하고 있다. 간호사, 영양사, 직업훈련교사 등도 고르게 배치돼 있다.


바다의 향기는 여러 면에서 다른 장애인직업재활시설과는 차별화된 길을 걷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직원 복지 분야.
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는 전국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법정최저임금(시급 6,030원)을 보장하고 있다. 웬만한 관련시설에서는 언간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어디서 변변하게 지원해 주는 곳도 없이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이 원칙은 철칙으로 지켜지고 있다. 여타 관련 시설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최저임금 제외’ 신청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직원 노조도 결성돼 있다. 지난해에는 ‘인권위원회’도 만들었다. 7명으로 구성된 인권위는 경찰관계자, 지적장애협회장, 보호자 대표 등 대부분 외부인사들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올해부터는 직원들을 부를 때도 상하를 막론하고 이름 뒤에 반드시 ‘님’자를 붙이도록 했다. 서로를 존중하고 장애인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중 교육 프로그램도 연중 빼놓지 않고 있다. 단지 의무감에 의한 수동적인 교육이 아닌 현장 활동을 통한 실질적인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숙련된 근로자로 근무하는 장애인들도 속속 배출되고 있다.
이곳 유정호 대표는 “바다의 향기에서 일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으나 시설이 부족해 이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며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가능한 최대한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겠다.”고 밝혔다.

 

 

◆각종 공모자금으로 운영비 충당…전국 벤치마킹 잇달아

 

공무원부터 시작해 관련시설 관계자, 사회적기업 관계자, 일반 기업체 등 이곳을 벤치마킹하고 성공사례를 견학하기 위한 방문객도 매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전북지역 기관 국정감사 때 시간을 내 이곳을 찾았다. 장애인 모범 사업장의 실상을 직접 살펴보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이날 김종규 부안군수도 “이곳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자금은 전국 구석구석 공모사업에 응모해 충당해 나가고 있다. 2011년부터 올 현재까지 공모자금으로 지원받은 자금이 무려 15억 6000여만원에 달한다. 어지간한 회사나 여타 재활시설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곳 직원들의 열정과 마인드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7월에는 SK그룹 내 사회적 기업 ‘행복나래’ 협력사로 선정돼 지원금 7,700만원을 받았다.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공모에 참여(31곳)한 가운데 3차에 걸친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선정됐다. 전북지역에서도 여러 시설들이 참가했으나 바다의 향기만 유일하게 선정됐다.


공모사업을 통해 마련한 자금은 각종 시설 보강이나 설비 확충 등으로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인건비 등 운영 자금은 대부분 직원들이 직접 발품으로 김을 팔아 마련하고 있다. 요즘은 추석 대목을 앞두고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한민국 장애인직업재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겠습니다’


진정한 자립갱생의 길을 걷고 있는 바다의 향기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다. 자신들이 내세운 슬로건처럼 이들이 한 발자국 씩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최필선·신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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