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이냐, '쇠락'이냐의 막다른 길목에서 국민의당이 중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당내 대표주자인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 부진에다, 호남텃밭 경쟁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밀리고, 개혁보수신당 창당으로 제3당의 지위까지 흔들릴 처지에 놓이는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될 경우 조기 대선이 불가피함에 따라 국민의당의 입장은 더욱 다급해졌다. 민주당은 아직까지 비교적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국민의당의 ‘날개 없는 추락’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강력한 지지기반인 호남에서조차 민주당에게 추월당하고 있다. 첫 출발은 창대(昌大)했던 국민의당이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눈도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편집자 주)
국민의당의 최대 지지기반은 호남이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4.13 총선에서 야권의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 거대한 녹색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을 밀어내고 호남 안방을 차지했다. 국민의당이 지난 총선에서 정당 지지율 2위와 함께 38석을 얻어 제3당으로 돌풍을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은 호남에서의 완승 덕이었다.
호남 전체 의석 28석 가운데 23석을 쓸어 담았다. 전북에서도 10석 중 7석을 독식했다. 민주당은 겨우 2석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그마저 1석은 새누리에게 내줬다. 민주당은 오히려 싹쓸이당하지 않은 것만으로 족해야 했다. 국민의당이 창당 불과 2개월여만에 당명만 바꿔 거둔 전리품 치고는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탓일까. 그렇게 기세 좋게 출발한 국민의당은 총선 후 2개월여 만에 시련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국민의당의 지난해 6월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4.13 총선에서 원내 제3당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이었지만 박선숙·김수민 의원의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당 지지율이 순식간에 급락한 뒤 여전히 두 자리 수 지지율 유지에도 버거워 하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 개혁보수신당에도 밀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 29일 공개한 새누리당 분당 후 잠재 정당 지지도를 보면 민주당이 30%대 초중반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이어 ‘개혁보수신당’(가칭)이 10%대 중후반, 새누리당이 10%대 중반, 국민의당이 10%대 초반으로 조사됐다. 국민의당 지지율은 급기야 4위로 내려앉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격차는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벌어져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보수신당 행을 택한다면 격차는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의당은 대통령 탄핵정국을 전후해 호남에서마저 안방 자리를 민주당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26일 공개한 주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광주ㆍ전라지역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42.5%를 기록한 반면 국민의당은 27%에 그쳤다. 국민의당이 공략 대상으로 꼽은 중도층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은 42%지만 국민의당은 17.1%에 머물렀다.
국회의원 숫자로는 ‘호남 제1당'인 국민의당이 지지율에서는 민주당에 대역전을 당하면서 '무늬만 1등' 꼴이 된 셈이다. 천정배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개혁정치의 상수였던 호남이 들러리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정동영 의원 말마따나 "지금 국민의당은 안방 내주고 곁방으로 건너 방으로 밀려났는데, 잘못하면 문 밖으로 쫓겨날 입장"이 되고 말았다.
국민의당 당 대표 경선에 나선 문병호 전략홍보본부장은 최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전국정당을 지향했지만 현재 호남에 갇힌 정당이 되었다”며 “당이 변화와 혁신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전북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대권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빠지고 탄핵 국면에서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한 국민의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새로움의 실종’이라는 얘기다.
◆호남 자민련 모습으로 전락될까 우려
국민의당이 여전히 호남에 갇혀서 호남 민심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과연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 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때문에 국민의당이 호남이 아닌 전국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호남에 갇혀 있게 된다면 호남 민심은 국민의당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친문 패권주의 등으로 인해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전국정당으로, 그리고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과연 국민의당이 단독으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겠느냐”라는 비관 섞인 시각이 호남인들 사이에 확산되는 형국이다.
여기에 자칫하면 국민의당이 호남 자민련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지지율 회복을 억누르고 있다. 당원 중 절반이 있는 호남에서마저 민심을 얻지 못하면 대권은 물 건너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당내에 팽배해 있다.
정체성 부분에서 과연 국민의당이 ‘야당’인지 ‘여당’인지 헷갈린다는 얘기도 많다. 새누리당 비박계와의 연대설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물론 비박계와 연대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세간의 불신을 불식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 정당으로서의 면모 갖춰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과시해온 국민의당이 개혁보수신당과의 경쟁에 직면하게 되면서 위기감이 한층 증폭되고 있다.
개혁보수신당은 일단 30명 선의 의석으로 원내 4당 지위를 확보하며 출발했다. 하지만 향후 탈당 규모가 확대돼 9석만 늘어나면 국민의당 의석을 넘어선다. 추가 탈당이 현실화되면 국민의당은 원내 제3당에서 제4당으로 밀려나게 된다.
3당이냐 4당이냐를 떠나서 국민의당은 일단 개혁보수신당과 캐스팅보트로서의 지위를 나눠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국민의당은 20대 국회 들어 사안에 따라 새누리당 또는 민주당과 손을 잡으며 쟁점사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왔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선 개혁보수신당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신세가 됐다.
민주당이 국민의당 없이 보수신당과 힘을 합쳐도 과반이 된다. 국민의당 입장에선 민주당 의존도마저 더욱 높아지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민의당으로서는 지난달 29일 끝난 원내대표 경선에 이어 오는 15일 있을 당대표 선거가 외연확장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여부의 마지막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대표 선거는 박지원 원내대표, 정동영 의원의 맞대결이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에 황주홍 의원, 문병호· 김영환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박 원내대표는 올해 초 창당 이후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등 지도부에서 주요 국면 마다 당을 이끌어 당에 장악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정동영 의원은 대통합신당 대선주자로 대선 본선을 치른 것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의장, 통일부 장관 등 화려한 경력을 갖춘 유력한 대항마로 꼽힌다.
이번에 선출될 지도부는 우선 안철수 전 대표 이외에 대선주자 기근현상을 탈출할 해법을 내놓는 것이 과제로 보인다. 손학규 전 대표 영입을 비롯해 제3지대를 통한 민주당 비주류, 개혁보수신당과의 연대 등 대선과정에서 외연확장을 위한 노력 등이 모두 새 지도부의 몫이고 당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의당은 뒤늦은 감이 있긴 하나 이제라도 무엇이 새 정치인지 보여줘야 한다. 호남 민심이 국민의당에게 바랬던 것은 전국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면서 정권교체의 밀알이 돼 달라는 것이었다.
호남이 마치 자신들의 불변의 ‘텃밭’인 양 무위도식하며 눌러 앉은 민주당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호남 민심이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며 국민의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