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흩뿌려진 삶의 방식들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면 '유산'이 된다.
눈으로만 봐야 하는 유형유산과 달리, 무형유산은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을 사용해야만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해져온 오랜 이야기는 유형유산보다는 무형유산에 훨씬 더 짙게 배어있다.
전라북도에는 국가 지정 11종목, 시·도지정 83종목의 무형문화재가 있다.
본지는 전북의 전통문화를 보전,전승하고 있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알아본다.
맛과 멋의 술 '이강주'
"옅은 노란색을 띠는 이 술은 언뜻보면 투명하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입에 대는 순간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기고, 목으로 넘기면 신선한 과일맛에 이어 달달한 맛이 난다.
후에 살짝 알콜에 존재감이 드러났으나 부드럽게 넘어갔다. 다 마신 뒤에는 마치 이슬을 삼킨 듯 청량했다"
필자가 이강주를 마셔본 느낌은 이러했다. '이강주'는 알콜농도가 25도인 약소주로, 전통소주에 배와 생각이 들어가 시원한 맛과 향을 낸다.
이강주는 조선 중기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됐던 한국 5대 명주 중 하나다.
특히 구한말 역사학자인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호산춘·죽력고와 함께 한국의 3대 명주로 소개되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후기부터 내려오는 대표적인 가면극인 봉산탈춤에서도 ‘홍곡주, 이강주 내어놓자’라는 사설로도 등장한다. 조선말 고종 황제 때 한미통상조약부터 1971년 남북 적십자 회담의 만찬까지 한국의 대표주로 공식석상에서 여러 번 소개되는 등 한국의 대표주라 해도 과하지 않다.
오늘은 조정형(78) 이강주 대표(전북무형문화재 제6-2호)를 만나 전통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숙취가 거의 없는 술 '이강주', 신기한데
"이강주의 가장 큰 특징은 숙취가 거의 없다는 거에요. 이유는 생강·울금·계피·꿀 등 여러 약재가 들어가기 때문이죠. 이강주는 배의 알싸한 청량감, 간 기능에 효과가 있는 생강, 맵고 단 계피, 목넘김을 부드럽게 해주는 벌꿀, 특히 숙취를 완화시켜주고 신경을 안정시켜주는 울금이 어우러져 독특한 향과 두꺼운 맛을 냅니다"
조 명인은 이강주에 들어가는 배와 생강, 울금, 계피, 꿀은 인근지역에서 나는 것을 사용한다고 했다. 특히 생강은 전북 완주 봉동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한다. 이 지역은 토질이 황토색 점질토로 생강재배의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강주는 독하지 않고 순수하며, 입에 감기는 맛이 으뜸인 명주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 민속주를 접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술 빚는 가마솥이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태몽을 꿨다고 합니다. 진외가의 할아버지였던 가람 이병기 선생은 태몽이야기를 듣고 '솥 정'자를 넣어 정형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집안이 몇대에 걸친 전주 부사를 지내온 집안이라 모임도 많고 술을 즐겨드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이강주를 빚는 것이 가풍의 하나였죠"
이런 연유로 조 명인의 집안에서는 6대째 가양주를 만들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은 조 명인이 민속주에 관심을 갖도록 한 계기가 됐다.
조 명인은 1964년 전북대학교에서 발효학을 전공, 젊은 나이에 목포 삼학소주를 거쳐 익산 보배소주와 제주 한라소주의 기술고문으로도 일했다.
그는 주류업계에서 30년간 몸담았고, 1980년에는 최초 주조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조 명인은 소주공장 책임자로 있으면서 전국 민속주 제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밀주 단속이 워낙 심해 민속주를 배우기 어려웠던 시기인 1984년에는 소주공장에서 나와 전국을 돌며 본격 민속주 비법 익히기에 힘을 쏟았다.
수많은 민속주를 만들고 먹어본 후, 옛날부터 집에서 빚어 온 이강주에 매력을 느끼고 이를 전승하기로 했다.
그는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이강주를 할머니와 어머니의 도움으로 완성해냈고, 1987년 전북 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됐다.
-완주군에 개인 박물관이 있다는데.
"지난 1993년에 문을 연 '고천 박물관(주조전시관)은 제가 40여년동안 수집한 약1400여점의 술빚는 도구 및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우리나라 술의 제조역사를 한눈에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시연 문의가 있을때마다 이 곳에서 수차례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강주의 상품화, 그리고 세계화
이강주는 1988년도 올림픽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선보여졌다. 그 후 본격적으로 제품화에 들어갔고, 1991년 제품화가 성공하면서 조 명인은 전통식품 명인 9호로 등재됐다.
조 명인은 세계에 이강주를 수출하기 위해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이강주를 만들고 있다.
특히 이강주를 빚어온지 30년이 지난 지금은 유럽수출을 목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직영판매점인 '이강네덜란드'를 개설, 판로개척에 적극 힘쓰고 있다.
"이강주 알콜 도수는 25도지만, 전통의 맛을 유지하면서 서구인들의 취향에 어울리는 맛과 향을 조화시킨 19도 이강주와, 높은 도수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을 위한 38도 이강주도 출시했습니다. 앞으로 이강주를 세계의 명주로 도약하기 위해 5년, 10년 숙성연구를 진행하고 다른 한국의 전통주와도 상생하며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야심차게 연구한 '분말주'는 무엇인지.
"분말주는 액체의 술을 고체의 술로 변형시킨 것을 말해요. 분말주류는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술이지만, 간편성과 보존성이 높아 기호성 식품, 식품첨가물 및 각종 칵테일 술로 전망이 높아요"
분말주는 제조원가에서 오는 높은 가격차이로 일반 술로는 한계가 있지만 휴대가 간편해 등산용, 항해용 술이나 각종 요리의 첨가물 등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게 조 명인의 설명이다.
이강주 연구소에서는 38%의 이강주를 가지고 수년간 연구를 통해 40% 분말주인 Leegang Powered Alcohol의 제조실험에 성공, 지난해 6월에 특허를 출원했고, 9월 제조시설 면허허가를 받아 현재 이강주 제2공장에서 상품화 시설을 진행중에 있다.
-앞으로의 꿈·계획은.
"그 전부터 꿈꿔왔던 일은 '전통주학교'를 만드는 거였어요. 20여명정도를 구성해서 대학들과 연계해 전통주를 가르치는 일이요.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지금은 포기했어요(하하)"
조 명인은 '교육장'이 되어 전통주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전통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제대로 전통주를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어 최종적으로는 '이강재단'을 만드는 것이 조 명인의 목표다. 7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는 조 명인이었다.
무형문화재 6호 고천(古泉) 조정형 명인
■ 약력
-1964년 전북대 발효학과 졸업
-前 주류업계 25년 근무(64년~89년: 목포 삼학소주, 전주 오성주조, 이리 보배소주, 제주 한일소주)
-1980년 주조사 1급 취득
-1987년 전라북도 향토무형문화재 제6호 지정
-1996년 한국전통식품 명인 제9호 지정
-1999년 신지식농업인章 5호 지정
-2004년 (사)한국명인협회 초대회장 역임
-現 전주 이강주 회장 (1990년~ 현재)
■ 저서
-1989년 『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 』
-2003년 『 우리땅에서 익은 우리술 』
-2011년 『 명주보감 』
■ 상훈
-1998년 재경부 장관 표창 (성실납세)
-1998년 대통령 표창 (가공산업육성)
-2002년 석탑산업훈장 (가공산업육성)
<이강주 만드는 과정>
1. 누룩과 멥쌀로 약주를 빚어 증류를 거쳐 소주를 만든다.
2. 술을 소주고리에 넣고 전통방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3.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넣고 3개월 이상 침출시킨다.
4. 꿀을 넣어 숙성시킨다.
/황은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