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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의 꽃 판소리는 열정의 결정체이자 인생"


-판소리란 무엇인가

'판소리'는 한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춰 말, 노래, 몸짓을 섞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연예술이다.

판소리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리하는 것이다. 판소리에 '판'과 '소리'의 합성어이며, 판이란 '사람들이 모인 자리'를 뜻하며, 소리는 '노래를 통칭하는 예스러운 표현'이다. 

과거에는 판놀음으로 실외에서 벌어졌지만, 현재에는 실내 공연장 무대에서 연행되고 있다.

판소리꾼은 두루마기와 비슷한 겉옷인 창의를 입고, 갓을 쓰고,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서서 소리를 하며, 고수는 북을 앞에 놓고 바닥에 앉아 서로 마주보면서 호흡을 맞춰나간다.

고수가 '얼씨구', '으이', '좋다' 등 감탄사를 소리 중간중간에 넣는데 이것을 추임새라 한다.

이는 사람의 흥을 돋우어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부채로 하는 몸짓을 '너름새', '발림'이라 하는데 이는 극적 상홍을 몸짓으로 그려내 시각적 효과를 더한다.

판소리는 귀로만 듣는것이 아닌, 눈으로 보는 공연예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종합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제2호 이용길 명창

이용길 명창은 판소리 5마당 중 '춘향가'로 전북 무형문화재(김제시)가 됐다. 판소리 5마당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부가, 적벽가 등이다.

이 명창은 1935년 김제 백구면에서 출생, 22세(1956)부터 근대 5명창 중 이동백 명창의 제자인 강장원 선생의 수제자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주로 '수궁가'와 '춘향가'의 토막소리를 배웠으며, 심청가도 일부 배웠다.

30세에 박초월 선생에게 '흥보가'를, 32세에 정광수 선생에게 '적벽가' 중 '삼고초려'를 배웠다.

38세부터 정권진 선생 문하의 이수자로 들어가 '춘향가와 '심청가' 두 바탕을 본격 사사했다. 그 후 다시 성우향 선생에게 춘향가 완판을 사사받았다.

마지막 적벽가는 정철호 선생에게 배웠다. 

이 명창은 1980년대에 조상현 선생과 함께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소리를 냈다. 1989년 헝가리 등 동구권 9개 국가 순회공연을 했고, 각종 고수대회에서 출연명창으로 소리를 냈다.

1994년에는 판소리 종합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이 명창은 꼭 무형문화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제자들이 나서서 2013년 김세종 바디 '춘향가'로 전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 한다.

그가 부르는 '춘향가'는 김세종-김찬업-정응민(1896-1963)-정권진-성우향으로 이어지는 바디다.

통성 성음은 정권진과 흡사하며, 발음과 장단의 운용이 명백하고, 발림이 시원스럽다는 평이다.

이 명창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다 사사 받았지만, 그중 김세종제 춘향가가 최고라고 말한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오늘날 전승되고있는 판소리 가운데 가장 치밀하고, 사설이 잘 다듬어져 있어 기품이 있다는 평이다.



-이용길 명창의 판소리 전승활동

이 명창은 판소리 다섯바탕을 하고 있지만, 김세종제 춘향가 위주로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1990년부터 60년 이상 제자를 가르쳐 왔으며, 길러낸 제자들은 수백여명으로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다.

2000년부터 매년 제자발표회를 하고 있고, 오래된 제자들은 약 20명정도가 있다.(대표적인 제자: 조중천, 정경화, 박순희, 임인환, 김금자 등)

지난해 제자 발표회는 서울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제자들과 입체창으로 발표회를 했다.

이 명창은 김제와 서울에서 제자양성을 하고 있다. 이 명창이 62세때 김제시 요촌동에 '이용길 판소리 전수소'를 열었고, 현재 충남?전라도 지역 제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명창은 고향인 김제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이 전수소를 개원했다고 한다. 나아가 전북에서만 그치지 않고 전국을 무대로 판소리 후학 양성을 위해 서울 분원도 개원했다.

서울 분원에서는 일반인 대상 서울국립국악원 내 한국전통예술문화학교에서 18년차 교수로 활동,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 곳에서는 일주일에 1번 3시간 수업을 통해 매년 30명정도의 학생을 배출한다. 수업은 디딤과정 1년, 돋움과정 3년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이 명창은 1년에 4~6회 정도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등을 돌며 대통령상 등을 심사하고 있다. 
현재 전수장학생은 이우상(1968)이다.



-이용길 명창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


이 명창은 제자들에게 "모든 소리를 받쳐줄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득음을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하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장소는 '굴'이라고 했다. 소리는 목으로만 하는 것이 아닌, 아랫배 단전을 사용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목을 상청과 하청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식생활과 호흡 및 감정, 자세, 마음가짐도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용길 명창에게 '판소리'란
이 명창은 판소리가 '전통문화의 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판소리는 열정의 결정체이자, 인생이다. 

그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판소리의 멋과 흥을 알리는 것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 명창은 심청가, 춘향가 등을 거의 완벽히 소화하는 등 최고의 경지에 올라가 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한류 K-POP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고, 젊은 세대들이 한국 가요문화에 자부심을 느낄 정도가 된 지금. 하지만 정작 우리의 진정한 소리인 국악은 지역행사나 축하공연 무대 외에는 일반인이 들을 수있는 기회가 거의 없을 정도로 소외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 명창은 전국을 무대로 한 공연활동과 후배 양성 등에 전심을 쏟고 있다.

전통 판소리를 계승하고, 대중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 명창의 집에는 '大志者不棄望’(대지자불기망)'이라는 문구가 크게 걸려있다고 한다. 이는 "큰 뜻을 품은 사람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통예술의 맥을 이음과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그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 명창의 마지막 바람은 우리나라 일류 소리꾼을 전부 모아 '창극 심청전'을 하여, 본인이 심봉사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남성 명창은 손에 꼽는데, 이 명창은 열정있는 남창들이 꾸준히 판소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성 명창은 송순섭(국가지정중요문화재), 이용길(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왕기석(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뿐이다.

그는 "판소리는 본래 남성들이 하던 소리였지만, 생업 유지의 어려움으로 많은 전수자들이 중도하차를 한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 명창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판소리의 멋과 흥을 알리는 것에 남은 인생을 바친다는 각오를 밝혔다./황은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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