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흩뿌려진 삶의 방식들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면 '유산'이 된다.
눈으로만 봐야 하는 유형유산과 달리, 무형유산은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을 사용해야만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해져온 오랜 이야기는 유형유산보다는 무형유산에 훨씬 더 짙게 배어있다.
전라북도에는 국가 지정 11종목, 시·도지정 83종목의 무형문화재가 있다.
본지는 전북의 전통문화를 보전,전승하고 있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전북무형문화재 10-2호 엄재수 선자장
지정일 2012.8.3, 세부종목 합죽선
■ 합죽선의 유래
부채는 바람을 일으켜 사용하는 도구다. 부채의 종류 중 '접선'은 그 기원을 한국으로 할 정도로 한국적인 분야이며, 북송시대 곽약허의 '도화견문지'(1076)에 접선을 받은 내용이 적혀 있어 최소 고려시대부터 전해내려온 공예분야다.
또 '조선왕조실록'의 태종 10년의 기록을 시작으로 면면히 이어온 단오선 진상의 풍속으로 지속된 조선의 대표적 공예라 할 수 있다.
당시 접선은 중국에서 황금 2량으로 거래할 정도의 귀중한 물건으로 중국의 사신들이 꼭 가져가고 싶어하던 물품이었다고 한다.
접선의 한 종류인 '합죽선'은 한자 뜻풀이 그대로 대나무를 합해 만든 부채다.
질 좋은 대나무의 겉대를 얇게 깎아 양면이 모두 겉대가 되게 서로 합해 붙인 살로 만든 것이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합죽선은 고급재료를 사용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다해서 가장 귀하게 여겨졌다. 특히 부채 본연의 기능 외에 산수화,사군자 등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넣어 미술적 가치도 지닌 격조높은 부채다.
합죽선은 2부6방(2부:골선부, 수장부, 6방:골선방,낙죽방,광방,그림방,도배방,사북방)으로 구성돼있으며, 선자장이 등록돼있을 정도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예분야였다. 특산지는 전주다.
■ 엄재수 선자장
소년시절부터 부친 엄주원 선자장과 함께 합죽선 작업에 참여했다. 1969년 초등학교 입학 당시부터 아버지의 공방에서 합죽선 작업을 도우며 자랐고, 1989년부터는 낙죽작업을 시작으로 본격 기능을 전수받았다. 1997년부터는 전북무형문화재 선자장 엄주원 선생의 전수조교로 활동했고, 2003년부터 한옥마을로 나와 미선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합죽선 제품을 만들기보다 옛 전통부채의 복원에 힘쓰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전통 합죽선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모양이나 재료의 쓰임이 일본의 것과 닮아졌으며 획일화됐기 때문이다.
엄 선자장은 전통부채가 좀더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인지, 복원에 온힘을 다하고 있다.
특히 엄 선자장은 지난 2008년부터 1년에 한번씩 개인전을 열고, 복원한 부채를 선보이는 등 부채를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 잊혀졌던 옛 부채 '칠접선'의 복원
엄 선자장은 지난 2016년 열린 개인전에서 일제강점기 이후 사라졌던 칠접선을 새롭게 선보였다. 칠접선은 합죽선과 함께 조선시대 후기를 양분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수요가 적어지게 돼 사라졌었다. 제작기법도 같이 사라져버려 만들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엄 선지장을 통해 극적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접선의 한 종류인 칠접선은 속살이 한겹으로 합죽선과 같은 형태를 가지지만, 속살에 옻칠을 한 부채를 말한다.
그는 낙죽기법, 칠기법 등을 사용했으며, 우각,대모,어피 등의 재료를 이용해 부채의 예술성을 높이는 작업을 했다.
또, 부채의 손잡이 끝 부분인 선두에 먹감나무, 대추나무, 소뼈 등을 덧대어 만들거나 반죽의 껍질을 얇게 깎아 말아 붙이는 기법 등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열린 개인전에서는 '소통'을 접목, 실제 부채를 구매한 사용자들이 원하는 부채를 만들어 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칠접선을 전시하기도 했다.
장인과 사용자간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접부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 '전통부채 복원' 한길만 가는 엄 선자장
그는 최고의 장인이란 "구매자의 마음을 훔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통에 입각한 실용적이고 다용도로 쓰이는, 그야말로 사용자에 맞는 맞춤형 부채를 만들어 구매자가 살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엄 선자장은 "일제강점기 이후 획일화된 합죽선의 형태가 우려된다"며 "전통 합죽선의 형태를 복원하는 일은 곧 우리의 전통을 보존하고 전승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통부채의 복원을 위해 앞으로도 전시,발표,판매 등 온힘을 다해 노력해나갈 계획이다.
/황은송 기자
<전시회 안내-2018 엄재수선자장 초대전>
'유물 복원전' (가제)
전시기간:2018년 6월1일~6월16일
전시장소:전주부채문화관
전시작품: 40~50점 내외
전시내용: 합죽선 유물 복원, 옛 부채의 선(線)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