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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용, 잊혀지지 않도록 꾸준히 이어갈 것"


"국악을 좋아했던 어머니를 따라 무용에 발을 붙였죠. 그때가 8살때였을 거에요. '김미화 무용연구소'라는 곳이었는데 지금의 전주 전동성당 옆 골목에 위치한 일본사람 집이었어요. 일제시대 최초 무용연구소였죠"
그는 처음 무용과 만났던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를 따라 무용에 발을 붙인 그는 현재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무용가들의 스승이자 버팀목이 됐다.
거의 황무지에 가까웠던 전북의 무용계에서 자신만의 무용분야를 개척한 그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최선(83. 본명 최정철)명인이다.


■ 전북무형문화재 제15호 최정철 명인

최 명인은 국악을 좋아하던 어머니를 따라 8살때 무용학원인 '김미화 무용연구소'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김미화 선생은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고, 전주에 남은 학생들은 무용연구소에 모여 계속 연습을 이어나갔다.
사라져가는 조선 춤을 배우기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그는 전주국악원에서 춤을 가르치던 '추월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조선 춤에 대한 발 디딤, 걷기, 손동작 등 기초적인 동작을 익히고 동초수건춤을 비롯한 산조춤, 법고춤 등을 배웠다. 

당시 사사한 동초수건춤은 호남살풀이춤의 바탕이 됐다. 그후 추월 선생이 떠난 6·25직후, 그는 전주에서 정읍농고 출신인 은방초(본명 은종협)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은방초와 당시 전주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후 최 명인은 그의 세번째 스승인 '정인방 선생'을 만나 학춤과 무당춤 살풀이춤 등 다양한 춤을 사사받았다. 그때가 1953년이다.

1960년에는 전주 도립극장에서 처음으로 무용발표회를 열었고, 1961년에는 '최선무용연구소'를 전주지역 최초로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고, 세계 각국으로 무용 순회공연을 다녔다.

그는 1996년 전북 최초 무용종목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호남살풀이춤, 그리고 동초수건춤

전북지역 무용은 주로 '기방무용'에 뿌리를 둔다. 특히 전주지역에는 조선시대 교방청이 있었을 뿐더러 지금의 전주·익산·군산 일대에 일제시대 기생의 조합인 권번이 있어 살풀이와 승무, 검무 등의 무용이 전북지역에서 발달해왔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최 명인이 스승들에게 배운 춤 가락을 기반으로, 살풀이 장단에 인간의 한을 정·중·동(靜中動)의 춤사위로 풀어내는 '호남살풀이춤'을 만들었다.

'호남살풀이춤'이란 맺고 풀어주는 가락에 혼을 담아 고운 선과 휘몰아치는 한이 간결하면서도, 한폭의 난을 그린 듯 시원스럽게 뿌려지는 수건에 인간의 이중구조적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춤이라고 정의된다.

이 춤의 특징은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는 것, 한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으며 맺고 풀고 어르는 묘미와 함께 고도의 절제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최 명인은 기생집 무용에 뿌리를 둔 호남살풀이춤을 오랜 세월에 걸쳐 무대화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부드럽고 온화하게 표현했다.

최 명인의 호남살풀이춤을 본 이들은 "깊이 가라앉은 호흡과 허공을 나르는 학처럼 멋이 묻어나는 춤사위에서 우아함이 느껴져요. 엇가락을 타는 장단에도 절로 흥이 나요"라고 표현했다.

최 명인은 전라도지방의 권번 또는 기방에서 동기(어린 기녀)나 초립동(초립을 쓴 어린 남자)이 췄던 수건춤을 재해석했는데, 이 춤이 바로 '동초수건춤'이다. 

동초수건춤은 작은 부채나 하얀 손수건을 들고 장구, 징, 구음으로만 이뤄진 장단에 맞춰 대청마루에서 화문석이나 돗자리를 펴놓고 그 위에서만 춤을 추는 것이 특징이다. 

섬세한 발 디딤과 흥과 멋이 묻어나는 고운 춤사위에 기방 기녀들의 한과 혼이 담겨있다. 


 최 명인에게 춤을 배우는 사람들

최 명인은 현재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1시까지 명인의 자택인 '최선춤전수관' 연습실에서 이수자들에게 춤을 전수하고 있다. 인원은 열댓명 정도인데 많이 모이면 15명 이상, 적게모이면 7명정도가 모인다고 한다.

특히 매년 평균 7~8회의 단독공연 및 제자들과의 공연을 진행하며 춤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자들이 많다. 이수자들은 대부분이 수도권, 지방 등 대학에서 교수로서 춤을 가르친다고 한다. 현재 전수조교는 명인의 딸인 최지원씨다.

최 명인은 제자들에게 '철학속에 혼이 담긴 춤을 추라'고 강조한다.

"혼이 담겨있고 정신이 스며있는 춤을 춰야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춤은 고무풍선과 같다"는게 그의 무용철학이다.
최 명인은 "혼이 없는 춤은 고무풍선에 지나지 않는다. 속이 빈 고무풍선은 둥둥 떠다니면서 빨강,노랑,초록 등 화려함만을 내비치지만, 혼이 꽉찬 춤은 무겁지만 깊은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내 춤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배워서 내 춤이 길이길이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침체되가는 전통무용, 살려야죠"

최 명인은 한국 전통무용이 한참 활황을 맞았던 지난 1980~90년대를 떠올리며 "그때는 전국 무용대회를 나가기 위해 전주에서 버스 한대를 전세해 참가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최근에는 무용계 자체의 규칙과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에서 무용을 하는 사람들과 활동 영역들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속에서도 힘이 닿는 데까지 전통무용을 알리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명인은 오는 5월 27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사제일심'이라는 주제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선생과 제자가 한마음이 되어 무대를 꾸미는 것이다. 공연에는 그의 제자들이 20여명정도 참여해 따로 또 같이 무대를 하게 된다.
최 명인은 "이번 공연을 위해 제자들과 더욱 한마음이 되어 열심히 준비할 것"이라며 "전통 무용과 춤이 잊혀지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앞으로도 공연을 통해 꾸준히 알려갈 계획"을 밝혔다.
/황은송 기자


[공연 경력]

1972. 3. 박정희 대통령 취임 축하공연
1980. 전두환 대통령 취임 축하공연 청와대 초청 방문
1992. 8. 13. 동남아 순회공연 태국 국립예술대학교 총장 초청공연
1993. 7. 하와이문공부 후원 시카고 한인체육대회 공연/뉴욕, 캐나다, L.A
1999. 4. 15. 전북 무형문화재 초청공연 “예향의 소리·춤”출연
2001. 9. 15. 제1회 전라북도 작고 국악인 추모제 무용부문 출연
2001. 10. 13. 무형문화재 공개 발표회(예능분야)-호남살풀이춤-참가, 출현
2002. 5. 시카고 한인 체전 축제 공연 참가
2005. 8. 9~10. 제1회 한국 춤 제전 추최:국악신문사 “호남살풀이춤” 출연
2014. 10. 3. 제14기 “호남살풀이춤” 이수자 배출
2014. 11. 9. 김진홍전통춤 보존회-“대감놀이”-신의계시 출연(국립국악원 예약당)
2014. 12. 11. 의정부시립무용단 제26회 정기공연 천년의 유산 “舞”-호남살풀이 춤 출연 (의정부 예술의전당)
2015. 7. 5.  산수의 길 80 최선 춤 “맥의 터” 공연,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2015. 10. 2. 제15기 “호남살풀이춤” 이수자 배출
2015. 10. 31. 2015 전주시 무형문화재 주간 “전주의 명인, 명창” 출연
2017. 06. 07. 호남-팔도 살풀이춤 명인들의 예술 한마당 (국립무형유산원)

[수상 경력]

1969. 전라북도 문화상 수상
1977. 중앙대학교 무용공로상, 조선대학교 안무상
1979.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 우수상 수상
1990. 원광대학교 총장상 수상
1998~1999. 중앙로타리클럽 회장
2014. 1. 23.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무용예술가상 수상
2014. 3. 2. 전통춤협회 전통 춤 예술대상 수상
2014. 6. 2. 제1회 대한민국 한국무용대상 수상
2014. 10. 24. 자랑스러운 전북인 대상 수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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