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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南청년단’

1946년 오늘 결성된 서북청년단은 ‘서남청년단’으로 고쳐 부를 수도 있다.
평안도에서 월남한 청년들을 주축으로 생겨났으나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곳은 제주도여서다.

최근 들어 주목을 끌고 있는 4.3사태에서 서북청년단은 단순한 ‘참가자’를 넘어 ‘발기인’ 같은 역할을 해냈다.
4.3사태는 그 전해(1947년)3월의 시위로 시작됐으나 서북청년단이 이를 과잉진압하지 않았으면 피할 수 있었을지 몰라서다.
봉기한 제주도민들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함께 ‘서북청년단 추방’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것도 그런 것이다.

이 단체의 ‘활약’은 물론 제주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백범 암살범 안두희는 물론 그의 배후로 지목되는 김창룡의 이력에서도 ‘서북청년단’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50년대 이후 잊혀져 가던 그 이름이 4.3사ㅐ로 다시 조명을 받고 있으니 제주도는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땅이기도 하다.
그것은 서북청년단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4.3사태가 감추어져 있던 시절의 그들은 오직 가해자의 모습이었으나 요즘은 그들을 역사의 피해자로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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