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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정신 훼손 말라

때 아닌 정치권 용어로 장수가 시끄럽다.
오는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자기 진영의 일부를 희생양 삼아 특적 세력의 제거에 나서는 시도를 일부 평론가들과 정치인들이 '논개작전', '논개전략' 용어를 남발하면서 의암 주논개를 부적절하게 빗대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과는 아무 상관없이 정파와 개인의 이익을 위한 단순한 책략적인 활동을 나라를 구하기 위한 고결한 희생과 비유하는 것은 숭고한 구국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암주논개정신선양회(선양회)가 지난 9일 전북도의회에서 회견을 열고 일부 정치평론가들에게 쓴 소리를 냈다.
선양회는 "의암 주논개는 임진왜란 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희생되자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의암에서 투신·순절한 충절의 여인이다"라며 "그러나 요즘 일부 방송에 나온 패널들은 논개정신에 전혀 맞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총선이 다가오면서 현 정치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정치평론 프로그램이 자주 방송되는 데, 일부 패널들이 '논개작전, 논개전략' 등을 펼친다는 말을 한다"면서 "이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크게 훼손하는 것으로 아주 잘못된 비유이다"고 강조했다.
또 "주논개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한 정치평론가들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라며 "고귀한 정신을 왜곡시킬 수 있는 비유 등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키백과에 실려있는 논개의 생애를 그대로 옮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객관적인 판단하에서 '논개작전', '논개전략'이란 단어가 과연 적절한지 판단해 보길 바란다.
논개는 전라북도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촌 출생으로 1574년 선비 주달문(朱達文)과 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반가(班家)의 딸로 태어났다.
부친 주달문은 진사(進士)로서 슬하에 아들 주대룡을 두었으나 15세에 괴질로 요절했다.
이후 40이 넘은 나이에 논개를 봤다.
1578년 부친 주달문의 별세 후 숙부 주달무의 집에 의탁했으나, 숙부가 벼 50석에 김부호(金富豪)에게 허혼(許婚)하니 모녀는 경상도(慶尙道) 안의현의 친가에서 피신했다.
1579년 부호의 기소로 구금됐으나, 장수 현감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의 명판결로 석방됐다. 현감의 관저에 의탁하게 되고 최경회가 논개를 부실(副室)로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최경회가 전라우도의 의병장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병사를 훈련할 때 논개는 이를 도왔다.
1593년 최경회가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동행하였으나,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연회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유인해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순절(殉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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