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서양 의학의 여명기에 합리적 의학의 문을 연 자연주의자이자 의학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인식한 휴머니스트로서 서양 의사들에게 이상적인 의사 상으로 인식되어 있다.
비록 그의 의술은 오늘날 과학적 의술 앞에 빛을 잃은 지 오래지만 의학의 이상이나 윤리에 관한 문제가 발생할 때면 언제나 “히포크라테스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반성이 들려올 만큼 그의 위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의 압축 파일이자 오늘날 의사들에게도 신선한 철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지상에서 서양 의학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남을 불멸의 정전(正典)이라 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수세기에 걸쳐 의료인들 행위의 지침으로 채택됐고 지금까지도 많은 의학 교육기관의 졸업식에 인용되고 있다.
‘의술은 인술이다.’ 인술이니 근본적으로 베푸는 행위이다. 실제 진료행위에서 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과 태도에서도 다른 사람 보다 훌륭하고 능력이 있어야 베풀 수 있다. 따라서 의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건하고 남에게 줄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의술은 상당부분 인술(仁術)이 아닌 상술(商術)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아무리 금쪽같은 규칙이나 윤리강령도 지켜지지 않으면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술이 한낱 돈벌이 상술로 타락해 버린다면 그건 재앙이나 다를 바 없다.
이달 말 정년을 맞는 전북대 치과대학 신효근 교수는 베트남 국민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슈바이처’로, 베트남 어린이들에게는 ‘슈바이처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추앙받고 있다. 신 교슈는 지난 20여년의 세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의료봉사팀을 꾸려 베트남을 찾았다. 일명 ‘언청이’로 불리는 구순구개열 어린이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베트남은 오랜 전쟁의 상흔인 고엽제 영향으로 천형(天刑)과도 같은 구순구개열 어린이들이 유독 많다.
태어날 때부터 입술이 갈라지고, 입천장이 뚫린 구순구개열은 조기에 수술 받지 못하면 평생을 안면장애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하지만 상당수 베트남 어린이들은 어려운 경제사정 탓에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여년 전 베트남 현지 의료봉사활동을 통해 이 같은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신 교수는 이후 매년 두 세차례씩 무료 진료를 위해 베트남을 찾았다. 말이 쉽지 20여 년 간 낯선 외국 땅에서 무료진료를 벌인다는 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의료인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따뜻한 인간애, 살신성인의 정신이 없이는 언감생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동안 구순구개열로 고통 받아온 수 백여 명의 베트남 어린이들이 신 교수의 손을 거쳐 새 삶과 웃음을 되찾았다. 신 교수는 정년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베트남을 방문하겠다고 한다. “손이 떨려 외과 수술을 못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고 한다. 의술이 상술로 둔갑되고 있는 시대에 신 교수야말로 의료인의 표상이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진정으로 실천하고 있는 휴머니스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