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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甲質)’은 범죄행위다

병원과 병원에 약을 납품하는 제약사들의 '검은 거래'는 케케묵은 이야기로 치부될 정도로 '뻔한 이야기'가 됐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이 알려졌고, ‘김영란법’이 시행돼 전국이 떠들썩한 지금 이 순간에도 암암리에 자행되는 '악습'으로 남아 있다. 전북 '전주 J병원 리베이트 사건'은 슈퍼 갑인 병원이 제약사 영업사원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단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제약사와 약 도매업자로부터 받은 리베이트 금액이 서민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고, 리베이트를 받는 방법은 교묘했고, 한편으로는 노골적이며 당당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약 도매업체 관계자는 30명, 제약회사 관계자는 46명이나 된다. 이 중에는 국내 굴지의 제약사 3∼4곳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지역에서 제법 규모가 큰 병원 두 곳을 운영하는 '슈퍼 갑'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리베이트 쌍벌제, '리베이트 투아웃제' 도입 등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당국의 각종 대책도 백약이 무효나 다름없다.

 


언제부터인가 잊을만하면 갑(甲)질 논란으로 나라 전체가 시끄럽다. 갑질이란 우월한 지위를 권력으로 착각해 불법을 저지르고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갑질 행사 당사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문제를 제기한 상대방을 공격하기 마련이다. 하나같이 우리사회를 좀먹는 패악질이다. 오죽하면 ‘갑질공화국’이라는 말도 나온다.

 


승무원을 겁박하고 항공기를 되돌리게 한 한 항공회사 임원, 백화점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리고 폭언을 퍼부은 고객 모녀, 제자에게 고문을 가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 등은 우리사회에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갑질 중 몇몇 사례에 불과하다.
본사가 대리점에 저지르는 부당한 횡포,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자행하는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빼앗아 가기, 군대와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저지르는 각종 폭력과 성추행 등을 보면 우리가 자유와 평등을 기본 가치로 삼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는 지 의문이 들게 한다.

 


갑질은 ‘갑을’ 관계에서 파생된 말이다. 갑을은 원래 계약법에서 계약체결의 당사자인 ‘갑방(甲方)’과 ‘을방(乙方)’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계약은 정의 상 둘 이상의 독립적인 개인이 자유의사에 의해 대등한 자격으로 체결하는 합의임에도 불구 갑이 거래관계에서 차지하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공정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만약 갑이 계약에 명시된 한도 내에서만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갑이 계약에 명시된 한도를 넘어 무리하게 권리를 주장하거나 계약에 명시되지도 않은 의무를 을에게 요구할 때 이러한 요구와 주장은 타당성을 결여한 횡포로 변질되고 만다.

 


우월적 지위에 기반을 둔 금품 요구, 위력 과시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1회성 단속에서 그치지 않고 드러난 갑질 패악을 토대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갑질은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더 방치하면 공정사회 구현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끊이지 않는 갑질 횡포문화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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