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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최전선 응급실은 도떼기시장

병원 응급실은 생명의 최전선이다. 세상이 평화롭든 전쟁이 나든 관계없이 우리나라 병원 응급실은 늘 ‘전쟁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국내 병원들의 응급실이 과포화 상태라는 얘기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야전병원을 방불케 하는 공간에서 의료진과 환자 모두 지쳐가고 있다. 심지어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가 응급실 침상이 없어 로비의자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
응급실 과밀화는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도 고통이지만, 감염이라는 또 다른 피해를 낳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한때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대표적이다. 응급실 과밀화가 메르스 전파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됐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역학조사단을 이끌고 한국에 왔던 후쿠다 게이지 세계보건기구 사무차장은 “세계 여러 병원을 보았지만 한국만큼 응급실 규모가 크고 과밀화된 곳을 보지 못했다”며 “이런 곳에서 감염이 발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바이러스가 한국을 위협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병원 문화 개선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15년도 응급의료기관 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과밀화지수가 100%를 넘는 국내 병원은 모두 11곳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이 182.3%로 가장 높았고, 전북대병원이 140.1%로 다음으로 높았다. 과밀화지수란 응급실 병상 수에 비해 응급환자가 어느 정도 많은지, 대기 시간이 얼마나 긴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100% 초과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병상이 없어 간이침대나 의자, 바닥 등에서 대기한다는 뜻이다.

 


중증 응급환자는 사망률이 95%를 넘는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다. 이처럼 심각한 상태의 환자가 전북대병원의 경우 응급실을 찾아도 정상 치료를 받기까지는 18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기다리는 도중에 얼마든지 증세가 악화되거나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실에서 과밀화와 재실 시간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은 거의 고질적인 문제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여기에다 환자 보호자가 더 많다 보니 응급실은 늘 비좁고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병원 응급실이 도떼기시장처럼 돼버린 탓에 정작 생명이 위급한 중증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부실해지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긴급한 구호를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속하는 문제다. 따라서 응급실의 의료 환경은 그 어느 현안보다도 시급하게 개선·보완돼야 할 중대 사안이다. 교통사고와 각종 안전사고, 화재를 비롯한 다양한 재난이 빈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응급 의료체계와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큰 문제다.

 


우리나라는 매년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가 1000만 명이 넘고, 이 중 70~80%는 비응급 경증 환자로 밝혀지고 있다. 정부, 병원도 이제 시설 장비와 예산 부족 탓은 그만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응급 의료운영체계 개선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응급상황에서 적절한 구호와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복지와 분배, 균형발전은 헛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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