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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독재로의 회귀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최순실 씨 등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놀아난 현 정권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말 공개를 앞두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최순실 게이트'로 다시 한 번 논란에 휘말렸다. ‘최순실 게이트’가 일파만파 번지면서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한 역사학계가 국정화 중단을 압박하고 나선 데다, 시민단체마저 ‘최순실 교과서’라며 가세할 태세다.

박근혜 정부는 "좌편향 된 중·고교 역사 교과서를 바로잡겠다"면서 지난해 10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여. 교육부는 오는 28일 인터넷에 ‘e북’ 형태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말까지 현장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1월 최종본을 확정, 3월부터 전국 6000여개 중·고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왔던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전국 역사 교사들의 97%가 반대하고 나섰고, 진보뿐 아니라 중도 성향도 반발하는 등 일반 시민들도 정부의 의도를 의심했다. 더구나 당초 집필진과 집필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던 교육부가 올 초 돌연 집필진 신상을 비공개 방침으로 바꾸고, 집필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으면서 불통, 불신의 대명사가 된 정책이다. 심지어는 서울 전북 광주 세종 강원 등 5개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미 국정교과서에 대응해 별도의 역사 보조교재를 제작하는 전대미문의 일도 벌어지고 있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최근 확정고시 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세월호 사태랑 똑같은 짓을 국정 교과서 가지고 하려는 것”이라며 국정화 철회를 촉구했다. 그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 8종을 폐기하고 단일 국정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세상에 이런 우매한 짓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에서나 종교개혁 할 때 있는 얘기다.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라고 질타했다. 급기야 국정화 정책에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란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국선언이 계층을 불문하고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최 씨의 국정농단이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집필진조차 비공개로 밀실에서 만든 교과서가 바른 역사관을 담았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많은 국민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가 한 가지 역사의식만을 강요하는 것이 독재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항일독립투쟁을 축소하고 민주화 투쟁을 폄훼한 것도 대다수 국민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는 정부가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왜곡된 역사를 고집하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는 결코 특정 정권의 것이 될 수 없다.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획일화해 역사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이미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차피 길게 가지 못할 교과서에 집착하는 건 국가적 낭비다. 정부는 더 이상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지 않도록 국정화를 중단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국정 교과서를 폐기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겸허히 들어야 한다. 그것이 국정을 바로잡는 최선의 길이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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