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예술인들이 융성해야 문화가 융성한다

“詩 한편에 3만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시집 한 권에 삼 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국밥이 한 그릇인데/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도 멀기도 하네//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 백원이 돌아온다/박리다 싶다가도/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푸른 바다처럼/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인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 전문이다. 한 시인의 경제적 고단함과 인간적 따뜻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문화예술인들의 생활고가 문제가 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2011년 수많은 예술인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일이 발생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 씨가 이 같은 내용의 쪽지를 이웃집 대문에 남기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으로 ‘예술인복지법(일명 최고은법)’이 제정됐다. 지난해 6월엔 연극배우 김운하 씨와 영화배우 판영진 씨가 세상을 떠났다. 김운하 씨는 고시원에서 죽은 지 5일 만에 발견됐다. 판영진 씨는 차 안에 번개탄을 피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배우의 쓸쓸한 죽음이 차례로 알려지면서 당시 많은 이들이 예술인 복지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아직 이들의 열악한 생존조건이 좋아졌다는 징후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대책 없이 시간만 흘러 예술인들은 여전히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예술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전업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인 10명 중 7명의 한 달 소득이 1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예술인 맞춤형 사회복지사업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업 예술인의 68.7%가 예술 관련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월수입이 10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43.1%는 월수입이 50만원에도 못 미쳤다. 예술 활동을 통한 수입이 200만원 이상인 비중은 11.9%로 10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겸업 예술인도 71.4%가 예술 활동만으로 벌어들이는 월수입이 50만원 미만이라고 밝혔다. 전업·겸업을 통틀어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전업으로 먹고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편의점 알바나 막노동을 해야 하는 문인과 예술인들이 부지기수다.

입만 열면 우리는 ‘21세기를 문화가 경쟁력인 시대, 창의성이 무기인 시대’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 경쟁력과 창의력의 원천인 예술인과 문인들의 이 비참한 현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인문, 예술 분야의 노동자를 비롯해 자영업자, 임금근로자 모두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온 힘을 쏟아야한다. 그것은 정말이지 인건비나 생활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존엄을 잃지 않을 생존권적 자유인 동시에 인권이기 때문이다.

문화융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기조이기도 하다. 문화를 융성하게 만드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예술인들이 자신의 생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화가 과연 융성해질 수 있을까? 문화 융성에 앞서 예술인들의 삶이 최소한은 보장돼야 한다. 예술인들이 융성해야 문화가 융성할 수 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