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흔히 이들을 불평분자, 자기주장이 강한 자,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무능력자 등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들은 인류의 발전과 변혁,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온 ‘위대한 소수자’들이기도 하다. 아웃사이더는 외롭고 힘들다. 중심의 테두리에 속하지 못하고 변방에서 서성이는 ‘주변인’이다. 중심으로 이동하려 해도 이미 단단해진 콘크리트 벽을 깨고 들어갈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아웃사이더가 다수로 변하고 이들이 뭉칠 때는 사회적 변혁을 이루게 된다. 세계 역사가 그 증거이다.
미국대선에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전사들이 나타났다. ‘아웃사이더의 반란’,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트럼프는 막말과 기행의 대명사, 비 정치인 출신 재벌이고, 지난 경선 기간 중 당내에서 조차도 가장 위험한 후보로 치부됐다. 그러나 노도와 같은 아웃사이더의 분노가 판세를 뒤집어엎었다.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추락한 경제로 인해 최대 피해자로 전락한 아웃사이더의 절규가 표로 나타난 것이다. 거함 힐러리를 꺾은 트럼프의 선거 전략은 철저히 아웃사이더에 맞춰져 있었다. 양극화 해소와 소득 재분배 문제가 그 핵심이다.
트럼프는 학식이 풍부하거나, 정치 경험이 많거나, 존경할만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단지 중산층 이하의 소외자들을 대변해 그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주장에 아웃사이더들이 열광했다. 아웃사이더의 반란은 기존 자본주의 체계의 문제점에 대한 반감이다. 경쟁에서 뒤쳐진 중산층 이하의 대중들이 기존의 체계로는 격차가 벌어지니 체제를 갈아엎자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2013년 통계를 보면 상위 3%가 하위 90%를 합친 부의 2배 이상을 차지했다. 일부 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아웃사이더로 밀려났다. 중산층의 몰락이 표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무모한 도발이요 어리석은 광기라고 말들 하지만 그들은 갈아엎고 난 뒤의 사태나 후유증을 생각하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금이 심각하다고 한다. 지난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과정에서도 아웃사이더의 반란이 일어났다. 최상위층의 런던과 아일랜드 일부, 그리고 유전으로 상대적 기득권을 누리는 스코틀랜드만 반대하고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찬성표를 던졌다. 지금 영국은 그 후유증으로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장래를 불안해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아웃사이더 돌풍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누적된 결과다.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인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 아웃사이더들이 부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아웃사이더들이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의미와도 같다. 현재 대한민국은 혼란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최고 지도자의 통치 부정에 대한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이 이뤄지고 있고, 국가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웃사이더들이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얘기다. 2017년 대선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정당이 바람을 일으켜 정치를 쇄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진정성과 현실감각을 갖춘 제대로 된 아웃사이더들이 대거 나서야 한다. 아웃사이더의 반란은 사회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펌프와 같다. 이들이 있어 고착화되는 사회에서 늘상 밑에서 기는 사람들이 희망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