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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으로 끝난 박근혜 표 ‘통일 대박론’

검찰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상징하는 ‘통일 대박’이란 표현이 최순실씨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2014년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청와대 비서진은 기자회견 직후 대박이란 표현이 비속어인지 확인할 정도로 박 대통령의 단어 선택은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박 대통령은 다보스포럼, 외교통일국방 업무보고에 이어 독일 드레스덴 간담회에서도 이 표현을 계속 언급해 ‘통일 대박’은 박근혜 정부 상징어처럼 굳어졌다.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한민국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며 “통일은 대박이다”고 언급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특유의 화법으로 제기한 ‘통일 대박론’은 바람을 일으켰다.

정당 지도자 시절 그는 면도칼 테러를 당하고 실려 간 병상에서 “대전은요?”라고 한마디 물음으로써,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개인의 처지보다는 집단 전체의 과제를 위해 헌신한다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지방선거 판세를 뒤집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한 방에 찍어내는 수사법을 구사했다. 박 대통령이 과거 “선거의 여왕” 칭호를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짧은 감성적 표현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탁월한 정치선전 언어 선택 덕분이었는데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특유의 솜씨를 다시 발휘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대박론의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통일 대박론은 통일의 구체적인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당위성과 환상만 키웠다. 알맹이가 생략된 ‘통일 대박론’이 뭔가 미스터리하고, 공허하고, 위험해 보였던 이유다. 통일 대박론은 한마디로 최순실-박근혜의 치기어린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이 이번 최순실 사태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 4년 동안 대통령이 들고 나온 문화융성, 창조경제, 통일대박론 등 이상한 용어들을 이해해 보려 애썼던 국민들은 그의 ‘창조한국어’가 애초부터 불통의 언어였음을 지금 충격적으로 깨닫고 있다. 어느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는 ‘베이비 토크’ 수준이라고 비아냥 거렸다.

우리 역사에서 통일 문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일은 비일비재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7·4 공동성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7.4 공동성명은 선언서 내용과 달리 남과 북 권력끼리 벌인 쇼였고, 이후 곧 더 깊은 냉전이 찾아왔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뜬금없이 ‘통일세’를 언급하면서 당시 이명박 정부 후반기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교류협력은 제쳐두고 장관이 나서 통일항아리만을 열심히 빚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명박 정권 이후 모든 통일 논의는 봉쇄되어 왔다.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5년에 이어 연속적으로 비틀어지고 팽개쳐졌다. 통일은 운 좋게 이뤄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하물며 국가로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통일인데 남북통일이 요행수나 공짜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낱 미신에 불과할 뿐이다. 최 약소국 신라의 삼국통일은 멋으로 한 게 아니다. 지도층의 단합력에 위기의식이 보태진 덕에 가능했다. 신라가 망국의 위기를 통일의 호기로 역전시킨 것은 지도층의 결사적 자세였다. 위기의식이 통일의지로 승화돼 통일의 주체세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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