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지난 2014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통해 통과를 촉구했던 법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장에게 직접 처리를 부탁할 정도로 이 법에 공을 들였다. 시행 직후인 지난달에는 “부작용만 부각돼선 안 될 것”이라며 언론·정치권 일각의 비판 목소리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자신과 그 측근들, 대기업 총수, 사회 최고위 지도층들은 김영란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이 지금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박대통령과 청와대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해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을 뜯어냈다. 이에 연루된 대기업 총수들은 다음 달 열릴 국감에 줄줄이 증인으로 출두해야 할 판이다. ‘강한 긍정’은 그와 정 반대의 ‘강한 부정’이라 하던가. 정부가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자화자찬하기에 열을 올릴 때 박 대통령은 한참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해 돈을 끌어 모으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끌어 모으던 시기는 김영란법이 제정된 이후다. 박근혜 정부가 법안 통과에 앞장서왔고 청탁금지의 취지와 정신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피해자’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과연 그럴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장사꾼이란 본시 손해 보는 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 법이다. 강제 모금이라고는 하지만, 반대급부로 특혜를 염두에 둔 자발성 기부였을 것이라는 점도 부인키 어렵다. 이게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척결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야단법석을 떨던 나라의 민낯이다.
고마움의 표시로 경찰관에게 4만5000원짜리 떡을 돌렸다가 김영란법으로 처벌받았던 시민은 지금 이 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최근 한 강연회에서 "박근혜 게이트를 보면 국가 체계를 완전히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한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뿌리까지 다 썩어있었다. 내가 정말 이러려고 김영란법 통과시켰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 후 서민 경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음식점업 생활 활동의 지표인 ‘음식점업 서비스업 생산지수’가 2011년 9월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각종 경조사와 행사에 빠지지 않던 화환, 꽃과 같은 화훼류 거래도 전년 대비 30%나 감소했다. 추운 겨울이면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하며 활발히 이뤄지던 기부금 액수도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지역 자원봉사단체나 각종 복지시설에 대한 후원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한다.
김영란법을 부정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서민들은 김영란법 시행 후 1000원짜리 음료수 한 잔 나눠 마시는 것도 조심하고 있는데, 큰 도적들은 떼지어 나라 곳간을 거덜 내고, 대통령이 선봉장이 돼 그 하수인들이 국가를 분탕질하는 꼴이 하도 기막히고 개탄스러워서 하는 소리다. 자의 반 타의 반 국민들은 '김영란법'에 적응해가는 사이, 대통령을 필두로 정작 사회 최고위 지도층들은 신명나는 굿판에 취해 있었다니. 김영란법?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