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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왕조시대로 회귀한 한국 역사

국정역사교과서가 배포되더라도 현장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기어이 국정교과서 배포를 강행하고 있다. 진즉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국정역사교과서 공개 후폭풍이 거세다. 전국의 교육청은 지난 28일 발표된 국정교과서를 전면 거부하고 보조교제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국 시도 교육감들은 이날 교육부가 공개한 중·고교 역사 국정교과서에 대해 "좌고우면조차 필요하지 않다"며 즉각 중단 및 폐기를 촉구했다. TF팀을 구성, 본격적으로 국정교과서에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교육청뿐이 아니다. 일선 학교 역사교사들이나 역사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국정역사교과서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줄기차게 고수해 온 전북교육청은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할 경우 교과서 구매대행 등 어떠한 협조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도내 학교 현장에는 국정교과서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북도의회 역시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도내 중·고교들의 교과서 구입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시작부터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전국 역사 교사들의 97%가 반대하고 나섰고, 진보뿐 아니라 중도 성향도 반발하는 등 일반 시민들도 정부의 의도를 의심했다. 역사 국정화를 지양하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동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았다. 더구나 당초 집필진과 집필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던 교육부가 올 초 돌연 집필진 신상을 비공개 방침으로 바꾸고, 집필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으면서 불통, 불신의 대명사가 된 정책이다. 하지만 정치공작 하듯이 밀실에서 진행해 온 국정 역사교과서가 역사적 진실을 담을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에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의,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에 의한 교과서’라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내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기에 맞춰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긴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가 유신 독재를 합리화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기 위해 일방적인 ‘국정사관’을 강요한 것처럼, 박근혜 역시 아버지의 왜곡된 전철을 똑같이 밟아가고 있다. 일국의 역사를 이렇게 농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고도 소름이 끼친다.

역사학의 기본 바탕인 ‘기록’을 둘러싼 굴절과 왜곡의 시도는 전 시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이는 당대를 넘어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역사는 특정 정권의 것이 될 수 없으며 역사에 대한 해석은 수천수만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의 역사인식을 획일화해 역사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이미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는 봉건왕조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것은 물론 친일파와 박정희 정권 미화를 통해 미래 세대의 역사 인식을 왜곡하는 위험한 정책이다. 어차피 길게 가지 못할 교과서에 집착하는 건 국력 낭비이자 국가적 수치다. 아무리 막 가는 식물정권이라고는 하지만, 털끝만큼의 양심이나 속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교과서 국정화 만큼은 당장 폐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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