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규정당하는 존재다. 그리고 규정짓는 자는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청소년에게 '공부', '성실', '예의' 등을 강요 한다. 규정에서 벗어난 청소년은 그것만으로도 ‘문제아’라 비난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아이들, 청소년들은 전혀 원치 않은 ‘경쟁의 정글’ 속에 마지못해 내던져진, 그 정글 속에서 숨만 쉬고 있는 존재들이다.
청소년에 대한 규정 짓기는 그들에게 어떠한 모습이나 행동을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금지’를 요구하기만 한다. 특히 '정치'는 철저하게 청소년이 배제된 영역이다. 그러한 존재들이 광화문 광장과 전국 거리에 나선 지 한 달이 넘어 간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10대를 '앵그리 틴(angry teen)'이라 지칭한다. '성난 10대'라는 뜻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권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성난 10대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20대 대학생들은 물론 '세월호 세대'인 10대 학생들이 촛불 집회에 동참하고, 심지어는 젊은 부모들과 함께 광장을 찾은 아기들까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유행어처럼 내뱉는다. 232만 촛불이 그렇게 영글어 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주판을 두드리는 ‘하야’와 ‘탄핵’이라는 용어는 큰 의미가 없다. 그저 분노와 절망을 정치적 용어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특하고 대견한 10대'라는 어른들의 칭찬마저 거부한다. 이 말에는 '10대는 미숙하다'는 편견이 담겨 있어서란다.
대다수 어른들은 청소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학교와 학원 안에서 이뤄지는 삶을 충실히 따라가라 요구해왔다. 학생에게 주어진 역할을 넘어서면 ‘탈선’ ‘비행’ ‘낙오’ ‘부적응’ 따위의 낙인을 찍었다. 청소년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1999년 중·고등학생을 포함한 56명이 사망한 인천 인현동 화재 사건 때도 학생들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묵살 당했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나, 대한민국 역사의 변곡점을 알리는 중요한 시기마다 청소년들은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광주학생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된 3·1운동 이후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4.19혁명은 대학생들의 소극적 저항에 반발한 고등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불씨를 지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도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거리에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
어떤 이들은 10대의 정치적 참여를 우려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생각이고 규정일 따름이다.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 경험은 오히려 더욱 권장돼야 한다. 만약 공부해야 하는 교실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반론을 편다면, 그건 어른들의 규정이고 정치에 대한 몰이해일 것이다.
청소년들이 켜고 있는 촛불의 바다는 국정농단의 원인자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잘못된 선택을 한 어른들에 대한 채찍이기도 하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원인자들(어른들)의 작태에 이들은 더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교실이 정치운동의 장으로 변질된다는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정치라는 것은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참여는 일정 나이가 된다고 저절로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움과 경험이 축적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참여 경험 역시 배움의 하나다. 어릴 때부터 정치참여 경험을 쌓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