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정조사에 참석한 주요 그룹 총수들이 잇달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탈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창립 55주년을 맞은 전경련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6일 국정조사에서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61년 5.16 쿠데타 이후 부정축재자로 몰린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기금을 내고, 그 기반으로 생긴 단체다. 표면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의 핵심 창구로 악용돼 왔다는 지적이 수없이 제기돼 왔다.
전경련의 위상이 추락한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계 원로들은 그간 전경련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범재계의 산실로 거듭나야 한다는 조언을 수없이 해왔지만, '정경 유착의 통로'라는 꼬리표를 아직까지 떼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이제는 기능과 존립 이유마저 의심받는 처지로 내몰려 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만시지탄하고 있다. 심지어 전경련 회장직은 이미 재계에서 기피 대상이 된 지 오래됐다.
전경련의 이 같은 현실은 전경련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전경련은 기업으로부터 모금을 부추겨 미르재단에 486억원, K스포츠재단에 286억원 등 총 772억원을 모금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면서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핵심고리 역할을 한 것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올 4월에는 어버이연합에 종교단체 이름의 차명계좌를 통해 억대 자금을 지원해줘 구설수에 올랐다. 실제 전경련은 어버이연합에 2014년 모두 3차례에 걸쳐 모두 1억 2000만원을 송금했다. 앞서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모금해 대선 비자금 제공, 2002년 불법 대선자금(차떼기 사건) 등에 연루되어 국민적 공분을 샀다.
분명한 건 지금의 전경련 위상으로는 재계 내에서조차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유시장경제 창달이라는 설립 목적 하에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산업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던 본래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재계 관계자들은 전경련이 그동안 회원사들에 대한 보호와 권익 향상보다는 정권의 눈치만 보면서 각종 기부금이나 출연금 모금 창구 역할에만 충실해왔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시장에서 강자의 힘이 집중되면 그 시장은 힘의 남용에 의해 초토화된다. 따라서 어느 선진국에서도 경제적 강자가 연합해서 이익단체를 만들어 정부에 로비하고 그 입장을 당당히 성명으로 발표하는 곳은 없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자리 잡은 대한민국에서 ‘전경련’은 여전히 경제단체의 대표가 아닌, 정경유착의 창구로서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서민과 중소상공인은 외면한 채 특정 대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정경유착의 창구로 자리 잡은 전경련은 이제 자발적으로 해체되어야 한다. 이미 경제단체가 아닌 정치단체로 변질돼 정치·사회 갈등의 진원지로 전락한 전경련이 더 이상 존속할 이유는 전혀 없다. 재계에서는 전경련이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남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전경련의 발전 모델로 외교·안보 및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제언을 내놓는 미국 헤리티지재단을 꼽은 기업인이 38%에 달했다는 점도 참고할만하다.